대한의사협회가 건강보험 수가(건강보험 급여 항목에 대해 병원에 지불하는 돈) 인상을 요구하며 집단휴진을 예고한 가운데,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수가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정부가 개원의들을 달래기 위한 당근으로 수가 인상을 내놓는 것으로 풀이되면서 재정 부담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우려도 나오고 있다.
문형표 장관은 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긴급 출입기자 간담회를 열고 "(건강보험)급여부분에서 의료수가가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정부 재정이나 국민 부담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해 국민 부담을 덜어주면서 수가에 반영(인상)하는 식으로 나아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건보 수가가 원가의 73.9%에 불과하다"는 의료계 주장에 대해 복지부가 "의료계가 수치를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저수가라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것이다.
문 장관의 이날 발언은 원격진료 도입 등 의료계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제안한 정부ㆍ의료계ㆍ가입자 협의체에 의사협회가 참여한다면 수가 인상을 협의 테이블에 올려놓겠다는 뜻이다. 의협이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기본진찰수가(1만3,580원) 인상으로 협의체가 구성되면 이것부터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또 1차 의료기관의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 예방상담을 급여화해 의원의 수익을 높여주는 방안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만성질환 예방상담을 급여화하는 것은 가입자와 의료계 모두 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처치나 수술의 수가가 낮고 MRI, CT 등 영상검사의 수가는 높은 편"이라며 건보재정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조정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과잉진료를 통제하는 대책 없이는 건보재정 부담과 건보료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건보공단 관계자는"의원의 경우 종합병원보다 환자 수가 적은 현실을 감안해 상대적으로 후하게 수가를 인상해왔다"며 "동네 의원의 손실을 수가 인상으로 보전해주는 것은 한계에 이른 상태"라고 말했다. 수가를 의미하는 종별 행위별 환산지수는 올해 병원이 68.8원(1.9% 인상), 의원이 72.2원(3.0% 인상)이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팀장은 "수가만 올려주면 건강보험 재정을 병원과 약사들에게만 퍼주는 꼴"이라며 "우리나라보다 수가가 높은 나라들은 진료량을 통제하는 시스템이 있는 만큼, 우리도 포괄수가제 진료량평가 등 과잉진료를 통제할 수 있는 대책을 먼저 마련한 후 수가인상이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우리나라 국민의 의료이용량(입원일수, 외래진료일수)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2.2배 수준"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수가만 인상할 경우 (의료계의 배만 불려) 보험가입자의 동의를 얻어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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