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회귀정책 내세운 美 외교력 약화로 영향력 줄 듯아베에 강경 대응 나서는 中 통상 분야서도 美·日과 대치중국 포위망 구축하려는 日 '야스쿠니 참배'로 난항 예상동북아 갈등 사이에 낀 韓 '조타 능력' 발휘 중재 나서야
일본 규슈 남단에서 대만 사이에 위치한 동중국해는 중국연안으로부터 수심이 낮은 대륙붕이 계속되다가, 갑자기 오키나와 열도 바깥쪽부터 6,000m도 넘게 수심이 곤두박질치며 해구를 형성하고 있다. 바다 속의 깊은 골이 마치 떠오르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는 미국-일본, 두 진영 사이의 대치선처럼 보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 중국의 꿈'을 선언했고, 아베 일본 총리는 '강한 일본을 되찾기 위한 싸움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결연히 밝혔다. 일본은 중국이 힘에 의한 현상변경을 시도한다고 비난하고, 중국은 일본이 2차대전의 전후 질서를 부정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똑같이 부국강병의 기치를 높인 두 나라가 서로 상대측이 현상을 깨려 한다고 손가락질을 하는, 강대강의 대결 형국이다. 2014년의 동북아는 이러한 격랑이 잦아들기는커녕, 더욱 거칠게 증폭되리라는 걱정이 앞선다.
미 외교력 약화 추세 지속 전망
미국은 군사력을 포함한 종합 국력에서 당분간 최강의 지위가 흔들림이 없겠지만, 그 외교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약화되는 추세가 계속될 전망이다. 국제문제에 대한 고립주의적 여론이 만만치 않은 가운데 11월 중간선거의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오바마 정권의 뒷심이 급속히 떨어질 수 있다.
미국은 아시아회귀와 재균형을 아시아태평양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시리아 문제에서 드러났듯이 단호함이 결여된 자세 때문에 주변국들의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에 대해 미국이 초반의 단호한 자세와는 달리, 민간항공사의 중국에 대한 비행계획 통보를 용인하는 입장으로 나오자 일본이 크게 실망했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현상은 중일간의 마찰을 방관하거나 자칫 더욱 고조시키는 결과로 연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중, 아베에 대한 강경 대응 불가피
중국의 향배는 작년 11월 3중전회에서 결정된 개혁방침들을 올해 어떻게 구체화시켜나가는지에 달렸다. 시 주석이 신년사에서 '국가통치체계와 통치능력의 현대화'를 강조했고, 신설되는 '국가안전위원회'에 외교안보 분야뿐만 아니라 국내적 안보 측면까지 총괄하는 독특한 역할을 맡긴 점이 주목된다. 그간 '자원배분에서 시장의 기초적 역할'이라 하던 표현을 3중전회에서 '결정적 역할'로 격상시키고, 상하이 자유무역시범구를 출범시켜 금리와 환율까지 시장에 맡기는 고난도 실험에 나선 중국 지도부로서는 과감한 개혁조치에 따른 국내적 불안 가능성에 확실히 대비하는 조직체계가 필요했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은 올해에도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해양권익 확대를 위한 행보를 강화하고,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에서도 단호한 자세를 견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야스쿠니 문제는 과거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 이후 5년 가까이 정상회담을 거부(제3국에서 개최된 정상회담은 제외)했던 경위가 있으므로 아베 정권에 대한 강경대응이 불가피할 것이다.
일, 중국 포위망 구축 우회전술 견지
일본은 야당은 물론, 자민당 내에서도 대안세력이 부재한 가운데 아베 정권의 독주체제가 계속될 것이다. 아베노믹스를 간판으로 연간 주가상승률 57%를 기록한 집권 1년차의 성적표는 아베 총리가 자신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오버'한 것이 지난해 말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였다. 이는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피'가 그의 소신인 만큼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다. 올해는 아베 색채 드러내기의 대표적 메뉴로 집단적자위권의 헌법해석 변경이 예정되어 있어서 또 한 차례의 소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미국이 '실망했다'는 반응을 보이기는 했지만, 일본은 심각한 재정난 때문에 대중국전략에서 일본의 적극적 역할 분담을 희망하는 미국의 본심을 충분히 꿰뚫고 있으며, 올해도 미일동맹 강화의 포석을 흔들림 없이 두어갈 것이다. 중국에 대해서는 지난 한해 전임자들의 두 배가 넘는 25개국을 방문하면서 소위 중국포위망 구축을 추진했던 아베 총리가 동일한 우회전술을 계속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야스쿠니 참배로 좁아진 외교적 입지 때문에 기대하는 만큼의 성과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을 언행일치로 보여주어야만 비로소 일본의 외교안보 정책도 국제사회로부터 폭넓은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 분야에서도 동북아 대치 연장
동북아의 대치선은 통상 분야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 라운드(DDA)는 12년의 지루한 교섭 끝에 지난해 12월에 부분적 타결을 보았다. 하지만 핵심적인 자유화 분야에서 아무런 성과를 내놓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상 DDA는 끝났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덕분에 WTO 교섭의 예외적 존재인 자유무역협정(FTA)이 더욱 각광을 받게 되었다. 동북아에서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중국 대 미국-일본의 구도로 각축을 벌이는 양상이 한층 심화될 것이다.
한국 편협한 내셔널리즘 극복해야
대형선박은 스스로 미세한 방향조절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항구에 접안할 때 반드시 예인선(tugboat)이 끌어주어야만 한다. 예인선은 때로는 10만 톤이 넘는 항공모함도 이끌어야 하는 만큼, 몸집은 작지만 강력한 엔진과 뛰어난 조타능력을 갖춰야 하고 민첩함과 유연함이 그 생명이다. 중국과 일본, 두 척의 거함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동북아평화라는 항구에 부드럽게 접안하도록 할 수 있는 예인선이 있을까. 바로 한국이다.
중국과 일본이 국가의 자존심을 앞세우며 내셔널리즘으로 상호 응수하는 동북아에서 한국까지 똑같이 가세해서는 긴장과 대립의 악순환이 더욱 깊어질 뿐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먼저 편협한 내셔널리즘을 순화시키고 극복할 필요가 있다.
한국 외교의 과제는 안보축으로서의 한미동맹과 경제축으로서의 한중협력관계를 조화롭게 양립시키는데 있으며, 그 요체는 어느 한쪽에 지나친 치우침이 없이 균형 잡힌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한미동맹이 외교안보의 기축임은 분명하지만, 동맹이 마치 절대화된 이념처럼 뇌리에 자리 잡아서는 대외전략의 유연한 운신은 기대하기 어렵다. 당연히 일정한 제한과 한계가 있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중관계에서는 동북공정, 탈북자, 불법조업과 같은 민감한 문제들에 대한 유연하고 실용적인 자세가 중요하다. 시간이 갈수록 중국에서도 국내여론의 영향력이 커지고 외교의 경직성이 심해지고 있으니 한국이 무리한 맞대응으로 판을 키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한일관계는 한국의 내셔널리즘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역인 만큼 단호하게 되받아쳐야 할 경우도 있지만, 과잉대응은 자제해야 한다. 과거사 문제를 비롯하여 따질 것은 따지되 실용적으로 협력할 것은 협력하는 분리대응이 필요하다. 한일관계야 말로 한국이 편협한 내셔널리즘을 극복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남북관계 좀 더 유연한 주도권 발휘해야
한국의 예인선 외교는 북한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주변국들의 본심이 한반도의 현상유지에 있다면, 결국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은 한국일 수밖에 없다. 장성택 처형이라는 혐오스런 사건은 어쩌면 김정은 체제의 취약함의 방증일지도 모른다. 북측이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한 것에서 실마리를 찾지 못하란 법도 없으니, 올해는 한국이 좀 더 유연한 주도권을 발휘했으면 한다. 한국은 지난날 남북한 FTA 같은 창조적 발상도 해봤던 경험이 있지 않나.
그리고 지난해 열지 못한 한중일 정상회담의 조기 개최를 추진해야 한다. 한일, 중일관계가 꽁꽁 얼어붙어 있지만 그럴수록 3자회담의 틀을 활용해서 우선 동파(凍破)의 위험만이라도 막아야 한다. 불편한 걸림돌을 피하기 위해 경제, 환경, 에너지와 같은 부드러운 의제로만 한정하거나, 양자회담은 생략하고 3자회담만 하는 방법도 있다. 게다가 개최지가 한국이면 중국도 일본도 간편하게 당일치기 방문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사실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보다도 내셔널리즘이 더 강한 사회인데다 남북분단의 상황 때문에 유연성도 부족하다. 그런데 무슨 예인선 역할이냐고, 연목구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길 말고는 한국의 국익을 지켜나갈 방도가 없고, 달리 동북아의 협력과 발전을 담보할 방책도 없다.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ㆍ 전 외교부 동북아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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