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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말' 농담

입력
2014.01.08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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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거나 우스운 지명, 긴 지명 짧은 지명 따위를 이것저것 주워섬기다 보니 어느덧 해가 바뀌었다. 이름에 관해서 쓰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도 많다. 하지만 이번엔 일단 새해에 맞는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뭐든지 다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다.

2014년을 청말의 해라고 하는 것은 금년이 육십갑자 중에서 서른한 번째인 갑오년이기 때문인데, 여러 말 중에서는 청말이 가장 그럴 듯해 보인다. 갑오년의 갑은 방위로는 동쪽, 숫자로는 3, 성정(性情)은 인(仁), 색으로는 청, 계절로는 봄, 인체의 오장 중에서는 간(肝)을 말한다고 한다.

오(午)가 들어간 해인 말띠 해 중에서 갑오는 청마, 병오는 적마, 경오는 백마, 무오는 황마, 임오는 흑마의 해로 불린다. 그런데 청황적백흑, 이 오색 중에서는 청색이 가장 약동하는 것 같고 희망이 있는 색깔로 보이지 않는가? 재작년 임진년을 흑룡의 해라고 했던 것도 임(壬)의 색깔이 검은색이었기 때문이다.

2014년이 되기까지 사람들이 주로 알고 있던 청마라는 말은 시인 유치환(1908~1967)의 아호였다. 청마는 왜 이런 호를 지었을까? 사실인지 아닌지 몰라도 연유가 좀 엉뚱하다. 도쿄 유학 시절에 친구였던 영문학자 정인섭이 유치환의 얼굴이 말 같다며 '마면(馬面)'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내가 아는 분에도 별명이 말코인 분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좀 거시기하다. 이걸 시인 홍사용이 청마라고 바꿔 호를 지었다고 한다. 역시 말 중에서는 청말이 가장 그럴듯하다.

사람들은 새해 덕담으로 청말처럼 씩씩하고 힘차고 활기차게 도약하고, 과감하고 용맹 있게 앞으로 나가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다. 연말 연시에 이메일로, 문자로, 카카오톡으로, 페이스북으로, 밴드로 정말 지겨울 만큼 많이 인사를 받았다. 소통수단이 다양해지다 보니 어디로 들어온 메시지인지 헷갈리는 경우까지 생긴다.

말을 가지고 만든 말도 참 많다. 그야말로 말로써 말이 많다. 리더십이 있는 말은 카리스馬,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말은 오바馬, 특히 일본에서 인기 있는 말은 욘사馬, 원자탄 맞은 말은 히로시馬, 조폭 두목이 타는 말은 까불지馬, 고민에 싸인 말은 딜레馬, 왜적을 물리치는 데 일조한 말은 행주치馬, 엄마 말이 길을 잃으면 맘馬미아, 이런 식이다.

그런데 이런 농담도 있다. 벌써 나온 지 몇 년 된 건데, 말(言)과 말(馬)이 슬그머니 엉키고 뒤바뀌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내용이다. 원래, 타고 다니는 '말'은 짧게 발음하고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 '말'은 길게 발음해야 하지만 요즘 말의 장단과 고저를 제대로 알고 발음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헷갈리기 때문에 성립할 수 있는 농담이다.

말이 싫어하는 놈은? 이게 그 농담의 제목이다. 제목에 나온 말은 분명 馬다. 그러나 말꼬리 잡는 놈, 말허리 자르는 놈, 말머리 돌리는 놈, 이렇게 세 가지를 대고 보면 타고 다니는 말이 아니라 입으로 하는 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말이라는 글자와 꼬리, 허리, 머리를 띄어 쓰면 타고 다니는 말에 관한 이야기가 되겠지. 그런데 사실은 이런 놈들보다 먼저 꼽아야 할 게 있다. 말문 막는 놈이다. 한사코 말문을 막더니 기껏 말을 하게 하고는 말꼬리를 잡고 시비를 걸거나 중간에 말을 자르거나 다른 말을 해버리는 놈, 모두 다 나쁘다.

그 다음에 더 나쁜 것은 말 더듬는 놈이다. 얼른얼른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고 더듬는다는 건지, 말을 타려고 더듬는다는 건지 여기서부터 헷갈린다. 헷갈리게 만드는 게 이 농담의 핵심이다. 더듬는 놈도 그렇지만 말 바꾸는 놈도 나쁜 놈이다. 약속을 했다가 잡아떼는 것도 나쁘고, 한번 타려고 했던 말을 바꾸는 것도 말로서는 서운한 일이다.

나쁜 놈은 이어진다. 가장 나쁜 놈은 말 더듬다가 다른 말 타는 놈이다. 실컷 더듬어놓고 다른 말을 탄다니 이제 말은 분명 馬인 것이 분명해졌고, 내용도 슬그머니 성적 농담으로 변질돼 간다. '말을 탄다'가 핵심어이다. 대체로 여기까지가 시중에 통용되고 있는 농담이다.

그래서 내가 몇 가지를 추가했다. 우선 말 뒤집는 놈. 당연히 나쁘다. 타고 다니는 말을 뒤집을 만한 힘이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 이게 무슨 말인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말 더듬다가 다른 말 타는 놈보다 더 나쁜 놈은 말 더듬다가 다른 말 타고서 말질 하는 놈이다. 더 더 나쁜 놈은 말 더듬다가 다른 말 타고서 말질 하는 놈과 말 섞는 놈이다. 더 더 더 나쁜 놈은 말 더듬다가 다른 말 타고서 말질 하는 놈과 말 섞다가 말꼬리 잡는 놈이다.

더 더 더 더 나쁜 놈은 말 더듬다가 다른 말 타고서 말질 하는 놈과 말 섞다가 말꼬리 잡는 놈의 말허리를 자르는 놈이다. 더 더 더 더 더 나쁜 놈은 말 더듬다가 다른 말 타고서 말질 하는 놈과 말 섞다가 말꼬리 잡는 놈의 말허리를 자르고 말머리를 돌리는 놈이다. 더 더 더 더 더 더 나쁜 놈은.....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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