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살아나면 기름값은 오른다. 경제활동이 왕성해지면서 에너지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연구기관들의 전망을 종합해보면 올해 세계경제의 예상 성장률은 3%대 후반. 작년보다 최소 0.5%포인트 이상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글로벌 경제가 회복궤도에 들어서는 만큼 국제유가도 올라야 정상인데, 각 기관들의 유가 전망치는 오히려 정반대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올해 두바이유 가격을 작년보다 1.8달러 내린 배럴당 102.7달러로 예상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지난해 배럴당 97.7달러 수준이던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가 올 1분기 95달러, 4분기엔 93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사실 국제유가는 2000년대 후반 이후 100달러 밑으로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뒤이은 유럽재정위기로 세계 경제가 대공황이래 최대 침체에 빠졌음에도 유가는 크게 내려가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글로벌 경제가 긴 불황에서 벗어나 회복국면으로 진입하자, 유가가 떨어지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예상 밖의 유가곡선을 만든 건 '북미 발(發) 셰일 혁명'이다. 북미지역에서 셰일가스와 함께 셰일유가 대량 생산됨에 따라, 수요증가 이상의 공급확대로 기름값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셰일가스란 오랜 세월 모래와 진흙이 쌓여 단단하게 굳은 퇴적암(셰일)층에 매장된 천연가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전 세계 31개국에 약 187조4,000억㎡가 매장돼 있다. 세계 인구가 앞으로 60년 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유정을 뚫으면 바로 채취가 가능한 일반 가스와 달리 암석층에 매장돼 개발에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최근 채굴기술의 급성장으로 상업생산이 가능해졌다.
셰일가스를 파낼 때 원유도 함께 나오는 데 이것이 셰일유다. 미국의 하루 총 원유생산량 가운데 셰일유 비중은 2009년 4.7%(25만배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45%(348만배럴)까지 늘어났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지원 속에 미국의 석유생산을 사실상 셰일유가 이끌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해안에 매장된 해양석유와 오일샌드(원유를 함유한 모래) 개발도 본격화 되고 있다. EIA는 최근 연례보고서에서 2016년 미국 원유생산량이 950만 배럴을 기록, 이전 사상 최대수준인 1970년의 960만 배럴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에 전 세계 매장량 1위인 중국이 쉘, 쉐브론 등 메이저 석유회사들과 손잡고 자국 내 셰일가스 및 셰일유 개발을 위한 공동탐사를 시작했고 러시아 역시 엑손모빌과 시베리아 지역에서 셰일가스 개발에 돌입하는 등 지난 수십 년간 세계 원유공급시장을 이끌어온 '중동시대'는 서서히 무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궁극엔 가격으로 보나, 생산량으로 보나,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보나 에너지원의 중심이 석유에서 가스로 이동할 것이란 분석이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셰일가스가 더 많이 개발될수록 가스가격은 하락할 것이고 이는 원유가격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중동정세 등에 따라 유가가 일시적으로 오를 수 있지만 세일유 공급확대 및 천연가스 중심의 에너지지형 개편, 대체에너지원 개발 등으로 이제 유가는 정점에 도달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물론 과거처럼 배럴당 30달러, 50달러 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한 때 우려했던 200달러가 될 일도 없을 것이란 얘기다. 이와 관련, EIA는 셰일혁명으로 인해 10년 후인 2025년에도 WTI가격이 115달러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차제에 에너지 도입전략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2020년까지 천연가스 도입양의 20%를 셰일가스로 대체한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면 여전히 원유의존도 중동의존도가 높다. 이 연구위원은 "에너지 패권이 중동에서 미주 등으로 옮겨가는 만큼 정부나 기업도 이에 맞게 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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