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파업이 마무리되자 이번엔 의사들이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충남 천안에서 11~12일 전국의사총파업 출정식을 가질 예정이다. '의료제도 바로세우기'를 주장하며 수많은 요구를 하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결국 보험수가(건강보험공단과 환자가 치료ㆍ약제에 대해 병원에 지불하는 돈) 인상을 겨냥한 집단행동으로 요약된다.
의협이 파업의 이유로 내세우는 이유들은 원격진료 반대,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허용(의료민영화) 반대, 의료수가를 결정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의료인 위원 증원,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모든 병의원과 약국에 건강보험 강제로 적용하는 제도) 개선 등이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파업의 명분으로 설득력은 적어 보인다.
우선 의료민영화 반대는 의협이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것과 이율배반적인 주장이라는 지적이다. 의협의 요구대로 모든 병의원이 당연히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사실상 영리 자회사 허용보다 한발 더 나아간 의료민영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반대하는 것은 의료 소비자를 대변하는 시민단체들이다.
원격의료는 대형병원에 허용될 경우 동네 의원을 찾는 환자를 빼앗길 수 있어 개원가에 타격이 있겠지만 현재 정부 방침은 동네 의원에만 허용한다는 것이어서 이 역시 당장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7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노환규 의협회장의 서신을 보면 의협의 목표는 결국 수가 인상이라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달 27일 노 회장은 전국 2만여명의 회원들에게 '대회원 서신문'을 보내 "원격의료와 영리병원제도를 막아 내기 위한 투쟁으로 시작되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의료왜곡의 근본적 원인이 되었던 원가 이하의 저수가라는 건강보험제도의 근원적인 문제를 고치기 위한 투쟁"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의협은 현재 진료수가의 원가보전율이 73.9%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컨대 현재 의원급 외래진료 초진진찰료는 1만3,580원인데 의협 일각에서는 이를 5만원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의료인들이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건정심 구조를 2분의 1로 늘리자는 요구도 사실상 수가를 결정하는 건정심에서 의료인 지분을 늘리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 회장은 또 서신에서 "현재 '의료민영화 반대'가 의료인 아닌 투자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의료제도에 대한 반대로 이해되고, 이것은 사무장 병의원(의사가 아닌 일반인이 의사를 고용해 운영하는 병의원)을 반대하는 의사협회와 방향이 같으므로 당분간 강하게 선을 긋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수가 인상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의료민영화 반대 여론을 활용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수가 인상이 의사들의 오랜 요구인 것은 사실이지만 파업의 명분으로 삼기는 어려워 의사들의 파업 동참 열기는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저수가 정책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의사는 없지만 어떻게 개선하라는 비전 제시는 하지 않고 저수가 정책 때문에 파업한다는 것은 비약"이라며 "무엇 때문에 총파업 출정식을 하는지 의사인 나도 떠오르는 게 없다"고 꼬집었다. 서울시내 한 정형외과 병원장은 "(원격의료 등) 최근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에 대해 개원가에서 우려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파업은 또 다른 의미"라며 "동참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박형욱 단국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는 "문형표 복지부 장관이 직접 의협을 찾아가는 등 대화 노력을 하고 있어 의협이 막무가내로 나오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 관계자는 "저수가 문제는 잘못된 건보제도에서 나타나는 여러가지 개선해야 할 사항 중 하나로 단순히 수가 인상을 요구하면서 집단행동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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