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가계 빚 1,000조원 시대에 결국 진입했다. 2004년말 가계 빚(가계신용)이 494조2,000억원이었으니, 10년 만에 두 배 이상 폭증한 것이다.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있는 폭탄이 점점 몸집을 불리고 있는 것. 서서히 회복 국면에 접어들지 않겠느냐는 장밋빛 경제 전망에도 먹구름이 끼게 됐다.
물론 실제 가계 빚이 작년 말 기준으로 1,000조원을 돌파했는지는 다음 달 25일 한국은행의 가계신용 통계를 확인해 봐야 한다. 하지만 작년 9월말 가계 신용은 1,000조원에 8조원 남짓 못 미쳤을 뿐이다. 예금취급기관에서만 이후 2개월 동안 가계 대출이 9조원이 늘어난 만큼, 구체적인 수치 확인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추세상 1,000조원 돌파는 충분히 예견됐던 것인 만큼, 수치의 상징성 만으로 과도하게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또 소득이 늘어나면서 가계 빚의 규모가 늘어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무서운 증가 속도다. 가계 빚은 해마다 50조~60조원씩 불어나고 있는 상황. 경제 규모를 보여주는 명목 국내총생산(GDP)과 비교를 해보면, 가계 빚이 얼마나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명목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을 보면 2003년 61.5%에서 2012년에는 75.6%까지 상승했고, 작년에는 그 비율이 더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들의 소득 증가율과 비교를 해봐도 부채 증가율이 얼마나 가파른지 알 수 있다. 개인들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3년 107%, 2004년에는 103%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후 매년 상승하면서 작년 6월말에는 역대 최고치인 137%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약한 고리'가 점차 늘어나는 것이 큰 부담이다. 한 두 개 끊어지기 시작하면 도미노 식으로 확산되면서 경제 전체에 큰 충격을 몰고 올 수 있다. 이미 저소득층의 경우 더 이상 금융회사에 손을 벌리기도 어려운 벼랑 끝까지 내몰린 상황. 이낙연 민주당 의원이 이날 공개한 NICE신용평가정보 자료에 따르면 저신용자(7~10등급)가 제도권 금융회사에서 받을 수 있는 대출 가능액은 작년 상반기 78조2,074억원으로 2년 전보다 21조원 이상 줄었다. 사금융 등 비제도권으로 떠밀려서 고금리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전날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언급했듯 '하우스 푸어' 역시 불어나는 가계 빚의 약한 고리다. 작년 12월에는 생애 최초 주택구입대출이 사상 최대 규모인 2조5,000억원 넘게 집행되기도 했다.
1,00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는 향후 우리 경제에 큰 짐일 수밖에 없다. 소득은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뒷걸음치는데 빚은 가파르게 늘어나면 가계는 원리금을 갚는데 허덕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가계의 소비는 줄어들고, 조금씩 엿보이는 경기 회복세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정부가 이달 중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을 내놓는다지만, 그 수위 조절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이미 위험 수위에 도달한 가계 부채를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과도하게 억제할 경우 박 대통령이 강조한 내수 활성화의 발목을 잡을 소지도 다분하기 때문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가계 부채가 명목 GDP 증가율 내에서 안정적으로 증가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이미 워낙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한 순간에 곳곳에서 구멍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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