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때 강탈당한 조선 불화가 1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반출된 이후 종적을 감췄던 이 불화는 2011년 미국 버지니아주 박물관협회가 훼손될 위기에 처한 문화재 목록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한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하 재단)은 지난달 한국에 도착한 불화를 7일 국립중앙박물관 사진실에서 공개했다. 가로 세로 각각 3m가 넘는 이 그림은 불법을 설파하는 석가모니의 좌우로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 있고 부처의 발치에 10대 제자 중 아난 존자와 가섭 존자가 앉아 있는 석가삼존도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처가 입고 있는 대의의 문양이나 삼존의 구도로 보아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의 양식과 흡사하다고 보고 있다. 특이한 점은 보통 삼존 뒤에 있는 아난존자와 가섭존자가 앞으로 나와 대화하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김승희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과장은 "두 제자가 전면에 부각된 도상은 지금까지 발견된 적이 없다"며 "미술사적으로도 희귀할 뿐 아니라 학술적 가치도 매우 높다"고 평했다.
고국으로 돌아오기까지 불화는 파란만장한 유랑생활을 겪었다. 조선불화에는 보통 제작연도와 출처가 쓰인 화기가 아래 쪽에 붙어 있는데 그림을 발견했을 당시 화기는 절취된 상태였다. 재단 측은 절도범들이 그림을 훔칠 때 화기부터 제거한다는 점으로 미뤄 그림이 무단으로 뜯겨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으로 반출된 불화는 고미술상 야마나카상회에 넘겨졌다. 전세계에 지점을 두고 중국, 태국, 한국의 고미술품을 팔던 야마나카상회는 1930년대 서양에 불었던 동양 미술 붐을 타고 미국 지점으로 불화를 보냈다. 그러다가 1941년 진주만 공습이 터지고 미국 정부가 자국 내 야마나카의 미술품을 몰수하는 과정에서 그림의 소유권이 미국 정부로 넘어갔다. 이후 경매를 전전하던 불화는 유찰을 거듭하다가 1944년 버지니아주 허미티지 박물관에 450달러에 팔려갔다. 세상의 빛을 다시 본 것은 2011년 버니지아주 박물관협회가 '위험에 처한 문화재 10선'을 유튜브로 공개할 때 이 불화를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영상에 나온 불화는 양탄자처럼 둘둘 말려 비닐에 싸인 채 천장에 매달려 40여년간 방치된 상태였다.
재단은 지난해 5월 인터넷을 통해 불화의 존재를 파악하고 환수 협상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미국계 온라인 게임업체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가 허미티지 박물관에 운영기금 3억원을 기부하면서 환수가 순조롭게 이뤄졌다.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구상하다가 게임을 많이 하는 한국인이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문화재청과 '한 문화재 한 지킴이' 협약을 하고 기부금을 냈는데 이번에 그 가운데 일부가 사용됐다.
불화에는 본존불의 얼굴 등 여러 부분에 가채의 흔적이 있어 향후 보수 과정을 거칠 예정이다. 김승희 과장은 "안료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보수 기법으로 보아 일본에서 덧칠한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에서 보수된 것으로 판단되면 안료를 벗겨내고 다시 칠하는 등 적절한 복원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환수의 성과는 또 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야마나카상회의 미술품 경매 목록을 실제로 확인한 것이다. 재단 측은 "야마나카의 장부에 이번 그림과 크기가 비슷한 조선불화가 하나 더 있었다"며 "소재는 파악이 안되지만 미국 재무부에 자료를 요청해 일제 때 불법 유출된 문화재들을 본격적으로 추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설명: 미국 버니지아주 허미티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가 기증 형식으로 반환한 조선시대 불화. 318.5㎝×315㎝, 비단에 채색, 1730년대 제작 추정. 조선 불화 중 부처의 제자인 아난 존자(아래 왼쪽)와 가섭 존자가 본존불 앞에 부각되어 그려진 것은 이 불화가 유일하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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