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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과연 전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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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과연 전부일까

입력
2014.01.0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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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등 실린 5290字 하나로 합치니 연기처럼…12개 유명도시 사진 1만컷 중첩하니 흐릿한 회색만…장노출로 찍은 작품 통해 소멸·증발의 공허함 담아히로시마·허난성·사격장… 특정 지역에 캔버스 방치 후햇볕·바람·눈·미생물 등 자연이 그린 작품 공개도 준비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뉴욕, 그 중에서도 유동인구가 제일 많은 타임스퀘어 한복판이 텅 비었다. 하늘은 맑고 공기는 명랑하건만, 글로벌 기업들의 현란한 광고판이 무색하게 거리에는 쥐새끼 한 마리 없다.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사진작가 김아타는 2005년작 '온에어 프로젝트 110-1: 타임스퀘어, 뉴욕'에서 8시간 동안 셔터를 열어두는 장노출 기법을 사용해 거리를 바삐 활보하는 뉴요커들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단노출 기법이 빠르게 움직이는 대상을 순간 포착한다면, 장노출 기법은 정지해 있거나 느릿하게 운동하는 것들만을 남겨둔다. 번화한 유령도시는 그렇게 탄생했다. 김아타의 사진 속에서 오늘이 전부인양 살아가는 이들은 설 자리가 없다.

김아타의 국내 개인전이 6년 만에 열린다. 2006년 아시아 작가로는 최초로 뉴욕 국제사진센터(ICP)에서 전시하고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초청돼 특별전을 열며 글로벌 작가로 발돋움한 그가 오랜 숨 고르기 끝에 선보이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도산대로 313 아트프로젝트에서 9일부터 내년까지 3부에 걸쳐 열리는 전시는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행보를 중간 결산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이것들은 전부 사라지게 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파주 스튜디오에서 만난 작가는 소멸을 위한 다채로운 장치들을 펼쳐 보였다. 장노출 기법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증발시키고 파르테논 신전을 얼음으로 만들어 녹아 스러지는 장면을 촬영했던 그는 이번엔 인류 지혜의 총합인 경전을 뜬구름으로 만들어버렸다. 수천~수만장의 사진을 겹친 '인달라' 시리즈에서 작가는 논어, 도덕경, 반야심경 등 각종 경전에 실린 글자를 한자한자 스캔해 하나로 합쳤다. 5,290자가 한 자로 포개져 희부연 연기처럼 변해버린 도덕경 앞에서 작가는 "천근 무게의 도덕경에서 비로소 해방됐다"고 외친다.

뉴욕, 도쿄, 베를린 등 유명 도시들도 사라졌다. 12개의 도시를 각각 1만 컷씩 촬영해 중첩시킨, 수행에 가까운 작업 끝에 나온 결과물은 허망하게도 흐릿한 회색의 화면이다. 작가가 "결과물의 공허함이 너무 인상적이라 계속 작업했다"는 이 사진은, 그러나 개념 위주의 작업이 시각적 아름다움을 담보할 수 없을 때 부딪히는 한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다음달 7일까지 열리는 1부 전시가 소멸에 관한 작업 '온에어' 프로젝트를 총정리한다면 8월 27일부터 열리는 2부 전시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자연의 그림'을 선보인다. 세계 각지에 캔버스를 심었다가 회수하는 이 프로젝트는 특정 지역이 가진 기억 또는 트라우마를 캔버스에 묻혀 오는 작업이다. 작가는 원폭이 투하됐던 히로시마, 노자의 고향인 중국 허난성, 미국의 인디언 보호구역, 석가모니가 수행했던 인도의 부다가야, 삼팔선 근처의 포탄 사격장 등 40여곳에 2년 가량 캔버스를 방치한 뒤 다시 작업장으로 가져와 보존 처리했다. 처음으로 카메라 없이 진행한 이 작업에 대해 그는 "빛으로 그린 그림이 사진이라면 이것만한 사진이 없다"는 변을 내놨다.

각 지역이 햇볕과 바람, 눈, 미생물을 이용해 캔버스에 그린 그림은 해당 장소의 과거와 현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포탄 사격장에서 거둬온 캔버스는 격렬하게 찢겨 있고,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수거한 캔버스는 놀랄 만큼 맑고 깨끗하다. 8월 전시 때는 히로시마에 심었던 캔버스 옆에 야생화 서식지에서 가져온 캔버스를 나란히 전시할 예정이다. 원폭의 장소에서 피어난 꽃. "예술이 인간을 치유할 수 있다"는 작가의 믿음으로 재구성한 신세계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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