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차례나 흉기로 여성을 위협해 성폭행한 범인이 비교적 가벼운 징역 7년형을 선고 받았다. 현행 법에 따라 개별 범죄를 합산하지 않고 세 건을 묶어 양형한 결과인데, 성범죄 등 죄질이 나쁜 범죄에 대해서는 병합 처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명 사립대 천문우주학과 대학원을 나와 박물관에서 초등학생에게 천문학을 가르치던 이모(30)씨는 2009년부터 성범죄를 저질렀다. 이씨는 그 해 3월 30일 새벽 인천 용현동의 원룸에 침입해 A(당시 22세)씨를 흉기로 위협한 뒤 성폭행했다. 이씨는 한 달여 뒤 첫 범행 장소 인근인 용현4동의 원룸에 들어가 B(당시 19세)씨의 손발을 테이프로 묶고 흉기를 들이대며 성폭행을 시도했으나 B씨가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자 달아났다.
신고를 받은 수사기관은 현장에서 이씨의 체액 등을 확보했지만 범죄자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에서 일치하는 DNA를 찾지 못해 수사는 미궁에 빠졌다.
4년간 잠잠하던 이씨의 범행은 지난해 5월 다시 시작됐다. 서울 연희동 원룸의 화장실 창문을 뜯고 들어간 그는 흉기로 위협하며 C(당시 20세)씨를 성폭행하려다 C씨가 거세게 저항하자 수 차례 폭행만 하고 달아났다. 이씨는 달아나는 모습이 인근에 주차된 차량 블랙박스에 찍혀 덜미를 잡혔고, DNA 대조결과 2009년 저지른 성범죄 2건도 드러났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김하늘)는 성폭력범죄특례법상 강간상해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하고 전자발찌 10년 부착 등을 명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다수 범죄 처리기준'에 따라 형량이 가장 높은 C씨에 대한 범죄(징역 5~9년)의 형량 상한에 A씨에 대한 범죄 형량 상한(5년6월)의 2분의 1과 B씨 상대 범죄 형량 상한(5년6월)의 3분의 1을 더해 징역 5년~13년7월을 선고 가능한 형량 범위로 산정했다. 그리고 "성 도착증, 강박증 때문에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이씨 측 주장 등을 감형 요소로 보고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씨가 2009년 범죄에 대해 법의 심판을 받은 뒤 다시 저지른 동종 범죄로 법정에 섰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씨가 2009년 저지른 범죄 2건에 대한 선고 가능 형량은 3년~8년3월. 2013년 범죄가 재범(再犯)이라면 누적 범죄 가중처벌 조항이 적용돼 형량이 징역 5~18년 사이가 돼 이씨는 최종적으로 8년~26년3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아야 한다. 중간에 잡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소 3년에서 최대 12년8월의 징역을 감형 받은 셈이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성범죄 등 특정 범죄에 대해서는 다수 범죄 처리기준을 적용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안준성 경희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미국 변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에서는 성폭력 범죄 등에 대해 각 범죄를 독립된 것으로 보고 형량을 단순 합산해 연속해서 집행하는 '형 순차집행(Consecutive sentence)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며 "이 제도가 성범죄 억제의 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씨에게 형 순차집행이 적용된다면 권고 형량의 범위는 징역 9년6월~20년이 된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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