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용의자'는 북한 특수요원 지동철(공유)을 스크린의 중심에 놓는다. 북한 당국에 가족을 잃은 뒤 남한에 정착한 그는 말 대신 몸으로 자신의 감정과 처지를 전한다. 동철을 요인 암살자로 의심하면서도 돕는 남한 특수요원 민 대령(박희순)도 입보다 주먹이 앞서는 인물이다. 동철이 쫓기고 쫓기면서 기어이 복수극을 완성해가는 '용의자'는 액션의 향연이 될 수밖에 없다. 액션으로 시작해 액션이 이야기를 이끌고 액션이 마무리한다.
'용의자'는 충무로에서 볼 수 없었던 낯선 동작들이 격하게 스크린을 채운다. 낙하산을 펴지 못하고 기절한 채 비행기에서 떨어진 공수부대원을 살리기 위해 민 대령이 몸을 던지는 장면, 마주 달리던 두 대의 차량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차량 한 대가 전복하는 모습 등을 실제로 촬영했다.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을 얻지 않고 날것으로 건져낸 모든 영상들이 활어처럼 펄떡거린다. 지난 5일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용의자'의 액션은 특별하고 특별하다.
충무로 액션의 절정을 보여준 '용의자'의 원신연 감독을 3일 낮 서울 남대문로 한국일보에서 만났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고 놀랐던 액션장면을 한 단계 뛰어넘자며 영화를 찍었다"고 말했다.
원 감독은 '용의자' 촬영 준비를 위해 할리우드 액션영화들을 많이 찾아 봤다. '할리우드 쪽에서 하지 않은 것을 하자는 생각'에서였다. "할리우드에서 '와' 소리 나게 만드는 카체이싱(차량 추격전) 장면이 있으면 그 보다 더 나가보자"는 심사였다고 한다. "과학적 검증을 통해 배우는 안전하면서도 표현은 극대화할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다.
'선진 액션'보다 더 나은 장면을 만들기 위해선 장비의 자체 개발도 필요했다. 차가 좁은 길목을 질주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스턴트맨이 차 지붕 위에서 운전할 수 있도록 하는 특수 장치를 만들었다. 박진감 넘치는 차량 정면 충돌 촬영을 위한 장비도 개발했다. 원 감독은 "액션은 과학"이라며 "액션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기술도 진보한다"고 말했다.
영화 속 지동철은 경찰에 쫓기다 한강다리에서 주저 없이 강으로 몸을 던진다. 공유가 와이어에 매달려 열두번이나 투신하며 건져낸 장면이다. "번지점프를 한번 하고선 다시는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던 이 꽃미남 배우는 감독의 짧은 설복 앞에 기꺼이 위험을 무릅썼다. 원 감독은 "우리가 이것을 해야 다른 (액션) 영화와 달라질 수 있으며 그래야 관객이 동철을 받아들 일수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단순히 감독의 말 몇 마디에 스타배우가 목숨을 걸었을까. 스턴트맨으로 영화를 시작해 무술감독으로 현장 스태프가 되고 결국 메가폰까지 쥔 원 감독의 입지전적 이력이 큰 믿음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25년 전 엄청나게 많은 스턴트 대역을 했습니다. 국내 와이어 액션은 거의 저를 통해 발전했다고 보면 돼요. 중학교 때 기계체조를 했는데 고교 시절 아는 형의 권유로 스턴트를 하게 됐어요. 22세 때부터 자연스레 비디오카메라로 단편을 찍었어요. 액션으로는 해결 안 되는 욕망을 단편영화로 풀어낸 것이죠. 다리에서 한번 떨어지고 돈 받아서 촬영하고 그런 식이었죠. 그러다 제도권으로 들어가서 붙어보자며 각종 공모전을 섭렵하고 상업영화까지 하게 된 것이지요."
원 감독은 인간의 폭력성과 비열한 본성을 까발린 '구타유발자'(2006)로 평단의 눈길을 잡았고 212만 관객을 모은 '세븐 데이즈'(2007)로 대중에 이름을 알렸다. 그렇게 '잘 나가는' 감독이 된 그의 다음 프로젝트는 '로보트 태권브이'였다. 동명의 토종 애니메이션을 3D실사영화로 옮긴다는 야심 찬 105억원짜리 이 기획은 투자 등의 문제로 좌초했다. 결국 '세븐 데이즈'이후 차기작은 '용의자'가 됐다. 그는 "'로보트 태권브이'는 4년 준비하다 중단 됐지만 아직 진행형"이라면서도 숨을 길게 내쉬었다. "'트랜스포머'나 '퍼시픽림'이 보여준 비주얼과 경쟁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꼭 할 것"이라며 아쉬움을 되씹기도 했다.
원 감독은 "차기작은 기억에 관한 스릴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탠리 큐브릭의 표현 방식에 한국적 색채를 입힌 영화"라고 예고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떤 시각적 표현 없이도 마음이 동하는 휴먼드라마를 가장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작품은 상업성이 약해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어쩌면 꽤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이 액션 마스터 때문에 눈물을 쏙 빼게 될지도 모른다.
충무로의 아웃사이더이자 한국 영화계의 게릴라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원신연 감독은 "기존 액션영화와 달리 호흡이 빠른 스타일리시 액션을 '용의자'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조영호기자 you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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