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신년 업무 개시일인 6일 기자회견에서 한국, 중국과 정상회담을 또 제안했다. 취임 1년 동안 두 나라를 상대로 정상회담을 촉구한 발언을 모두 세어보면 두 손이 모자랄 정도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는 "두 번 다시 전쟁 아래 힘들어하는 일이 없는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며 '평화주의자'를 자처했다. 한중 정상을 만난다면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와 헌법 개정의 "진의"를 터놓고 설명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지난 달 야스쿠니에 다녀온 직후에도 "부전(不戰)의 맹세를 하기 위해 참배했다"는 말을 했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 전까지는 부전의 맹세를 입에 올린 적이 없다. 오히려 지난 해 8월15일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조차 부전의 맹세를 의도적으로 빠뜨려 외교적 파장을 자초했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이 침략전쟁인지는 역사학자들이 판단할 일이라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
그의 속내는 "시대의 변화를 파악해 해석 변경과 개정을 위한 국민적 논의를 심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이날 발언에서 드러난다. 전력보유와 교전권을 금지하는 헌법9조 변경을 염두에 둔 것이다. 평화헌법 개정을 외쳐왔던 아베 총리는 사전작업의 일환으로 올해 안에 집단적 자위권 헌법해석 변경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침략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서 부전을 맹세하고 군국주의 부활을 우려하는 주변국가를 배려하지 않은 채 헌법을 고치겠다면서, 한중 정상을 만나 어떤 "진의"를 말하려는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이날 아베의 기자회견이 있기 4시간 여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먼저 기자회견을 가졌다. 박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여태까지 한일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며 본 총리의 진실된 행동을 촉구했다. 중국 외교부는 "일련의 행위들로 보건대 아베 총리가 말끝마다 중국과 관계를 중시하고 중국 지도자와 대화를 희망한다고 하는 것은 허위"라며 "스스로 중국 지도자와 대화의 대문을 닫아걸었다"고 꼬집었다.
아베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대화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며 "전제조건을 달지 말고 흉금을 터놓고 정상끼리 대화해나간다는 자세를 중국측도, 한국측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자신은 정상회담을 위한 모든 준비가 돼있는데 한중 정상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로 들린다. 거듭되면 될수록 더욱 그의 정상회담 제안에서 도무지 진의를 느낄 수 없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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