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정거래위원회 카르텔(담합) 담당 조사관은 한 기업에 현장조사를 나갔다 낭패를 겪었다. 회사 컴퓨터가 모두 새 것처럼 비어 있었다. 회사측이 단말기와 서버를 연결하는 통신선을 차단해 버린 것이었다.
기업들의 공정위 조사방해는 하루 이틀의 얘기가 아니다. 주요 대기업들은 대부분 조사방해 혐의로 제재를 받았다. 공정위가 3일 발표한 인천도시철도 2호선 건설공사 담합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공정위 조사관이 현장조사를 나갔을 때 포스코건설은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교체했다. 조사관이 하드디스크가 바뀐 것을 알아채자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건물 밖에 버렸다"고 둘러댔고 공정위는 다음날에야 하드디스크를 확보했다. 하지만 이미 내용은 모두 지워진 뒤였다.
공정위 관계자는 "조사방해 행위는 비일비재하다"면서 "담당자가 없다며 건물 입구에서 막고, 겨우 사무실에 들어가도 원하는 자료를 대라며 앞에선 시간을 끌고 뒤에선 자료를 빼돌리는 통에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기업들의 조사 방해가 끊임없이 되풀이될 수 있는 이유는 ▦공정위에 압수수색 등 강제조사 권한이 없고 ▦조사방해 행위가 적발이 된다 해도 처벌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먼저 공정위는 기업이 동의하지 않을 때 조사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증거 확보를 위해 사무실을 급습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2012년 폭언·폭행 등 물리력을 쓴 조사방해에 대해 징역형을 내릴 수 있게 공정거래법이 개정되기 전엔 조사관이 기업 측과 몸싸움을 벌이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낮은 조사방해 처벌수준이 더 큰 문제다. 공정거래법상 자료를 은닉·폐기하거나 위·변조해 조사를 방해한 사람에게 내릴 수 있는 처벌은 5,000만원 이하 과태료 처분에 불과하다. 당초 공정거래법은 조사방해 행위자를 형사처벌하도록 만들어졌지만 1999년 기업부담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처벌 방법이 과태료로 바뀌었다. 그러나 공정위 관계자는 "이마저도 '기업 활동 위축'이라는 재계 비판 탓에 제대로 적용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조사현장에서 조사방해 행위가 있어도 확실히 입증할 증거가 없으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반면 선진국 경쟁당국의 조사권은 훨씬 강력하다. 독일(연방카르텔청)은 긴급한 위험이 있는 경우 법원 허가 없이도 피조사자 사업장을 수색할 수 있고, 영업장소 출입을 막기만 해도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일본, 영국, 프랑스, 미국의 경쟁당국에서 압수수색 권한이 있다. 이들 국가에선 조사방해 행위 처벌 사례 자체가 찾기 어렵다.
때문에 학계에선 조사방해 처벌 수위를 높이거나 조사시점을 통보하는 대신 그때부터 모든 자료를 없애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소한 처벌이라도 강화해야 기업이 함부로 조사 방해에 나서지 못할 거라는 얘기다. 조성국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증거인멸, 공무집행방해 등 형법으로 조사방해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입증 어렵고, 처리 시간도 길다"며 "공정거래법에서 조사방해 행위 유형을 세분화하고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