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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1월 7일] 진짜 실력을 보여달라

입력
2014.01.0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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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까지 여야 의원들을 국회에 묶어놓은 건 외국인투자촉진법이었다. 정부ㆍ여당이 경제활성화를 강조할 때 항상 첫머리에 언급해 온 법안이다. 법이 통과됐으니 그들 주장대로 수 조원의 투자가 이뤄지고 1만4,000명의 일자리가 생겨날지 지켜볼 일이다. 티격태격하긴 했어도 이번 국회에선 정부가 경제활성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내세웠던 15개 법안 중 10개가 통과됐다. 경제활성화 법안이 다 통과되면 성장률이 0.2~0.3%포인트 올라갈 것이라고 한 정부로서는 비교적 괜찮은 수확을 거둔 셈이다.

통과된 법 가운데는 정부가 빈사 상태인 부동산 시장 살리기의 핵심이라고 주장해 온 다주택자 양도세 폐지, 취득세 영구 인하 등이 포함됐다. 부동산 시장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마당에 세금 몇 푼 내린다고 집을 사려 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마는 이렇게라도 경기가 살아나면 다행이다 싶다. 역대 최장 기간 파업과 노정관계 파탄이란 손실을 감수하고 기어코 철도경쟁 체제도 도입했다. 경쟁을 통해 서비스 질이 좋아지면 이용률이 높아지고, 철도 수입 증가로 이어져 부채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며 밀어붙였던 정부 논리의 타당성 여부는 머지 않아 판가름 난다. 어쨌든 방만 경영의 대명사인 공공기관 개혁은 거칠 것이 없어졌다. 이 정부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라는 거추장스러운 옷도 진작 벗어버렸다. 복지에 들어갈 수십 조원을 쏟아 붓지 않아도 되니 몸집이 날렵해졌고, 경제민주화는 시늉만 내고 만 덕분에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여기에 국민은 경제민주화나 복지가 대선을 위한 눈가림용 구호라는 걸 뒤늦게 알았지만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다. 선거 때 공약과 달리 기초노령연금이 대폭 줄었어도 경제가 살아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감당할 용의가 있다. 4대 중증질환 진료비를 모두 국가가 지원한다던 약속은 기약도 없어졌지만 액면 그대로 믿지 않았기에 더 실망할 것도 없을 터다.

법안이 마련되고 발목을 죄던 족쇄에서도 풀려나고 국민들도 희생을 감수하고 돕겠다는데 이 보다 더 여건이 좋을 수는 없다. 경제 살리기 엔진이 가열됐으니 이제 남은 일은 박근혜 정부가 진짜 실력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말로만이 아니라 가시적인 결과와 성과물을 보여줘야 한다. 지난 1년간의 실적은 시원찮았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일본 아베 총리는 '셰일가스 혁명' '아베노믹스'라는 차별화된 화두를 던져 경제 심리를 움직이는데 성공했다. 중국도 시진핑 국가주석 체제가 출범하면서 중국 경제가 재도약할 것이라는 희망이 싹텄다. 반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개념이 모호하고 구체성이 부족해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주가는 뒷걸음질치고 가계부채는 1,000조원이 넘었으며 일자리 창출은 선진국 평균치에도 못 미칠 정도로 초라하다. 작년 말 정부 조사에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하층이라고 응답한 국민이 절반에 달했다. 어디 경제뿐인가. 정치는 실종되고 1년 내내 공안정국이 휘몰아쳤다.

그래도 작년은 임기 첫해라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2년 차인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야당이 도와주지 않아서라는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과 선거 불복을 들먹이는 것도 약발이 떨어졌다. 박 대통령도 올해가 얼마나 중요한 해인지 잘 알고 있다. 어제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제'를 24차례나 언급한 데서도 엄중한 상황인식이 드러난다. 그러니 올해 박 대통령은 독일의 정치철학자 막스 베버 말을 빌리자면 '신념 윤리'보다 '책임 윤리'를 앞세워야 할 때다.

120년 전 갑오년은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해다. 기존 지배 체제의 부패와 악정(惡政)을 견디다 못한 민심이 폭발했다. 권력 앞에 엎드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 돌아설지 알 수 없는 게 민심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나아지지 않으면 국민들이 등을 돌린다는 건 동서고금의 진리다. 사람이 하늘이고 밥이 하늘이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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