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고령화로 경제활동인구가 급감하고 기업들의 투자도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 노동력과 자본 투입이라는 현재의 양적 성장 위주의 경제체질이 생산성 향상을 통한 질적 성장으로 전환될 수 있는 '제3의 성장요소'는 무엇일까.
정부는 오래 전부터 ▦내수 활성화 ▦서비스업 육성 등을 답으로 제시했다. 제조업에 비해 크게 낮은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내수 활성화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방안이다. 정부가 지난 5년 간 발표한 서비스업 육성 방안만 해도 총 20여회에 이른다. 올해도 내수 활성화와 서비스업 육성을 경제정책방향의 핵심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내용은 늘 비슷하고 성과는 미미하다. 제3의 성장요인을 '블랙박스'라 칭한다면 그 상자는 아직까지 열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서비스업 부진 1차 원인-공급과잉과 진입장벽
정부와 학계는 서비스업 육성 부진의 원인으로 자영업 공급과잉과 진입규제를 꼽고 있다. 우선 저부가가치 서비스업은 끊임없는 자영업자 유입으로 생산성이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대게 40대 후반, 50대 초반에 퇴직하는 직장인들이 음식업이나 숙박업, 도소매업, 운수업 등 손쉬워 보이는 자영업에 뛰어들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반면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은 높은 진입장벽과 불필요한 규제로 둘러 쌓여있다. 의료, 법률, 자문 등의 분야는 기존 면허 보유자들이 강력한 이익단체를 결성해 정책과정에 압력을 행사해 높은 진입장벽을 유지하고 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내국인들이 국내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해외로 나가서까지 돈을 지불하는 고부가가치 서비스 분야를 국산화해야 한다"면서 관광ㆍ의료 같은 분야에서 규제완화와 경쟁 촉진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국민소득 분배 불균형이 내수 부진 원인
이 같이 알려진 이유 뒤에 숨은 더 근본적인 원인이 하나 더 있다. 서비스업은 당장 해외 수출을 하기는 어려운 만큼, 성장을 위해서는 탄탄한 내수 시장이 뒷받침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내수의 성장기여도가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내수를 뒷받침해야 할 가계가 소비를 할 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공연장을 만들고 관광지를 개발해 놓아도 경제성을 못갖출 가능성이 크다.
가계에 돈이 없는 근본 이유는 국민소득이 가계와 기업, 정부에 불균형하게 배분되고 있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민총소득(GNI) 중 가계의 비중은 나날이 줄고 기업 비중만 급격히 커지기 시작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 현상은 더 심화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의 '한국경제의 가계·기업 간 소득성장 불균형 문제: 현상, 원인, 함의'(강두용, 이상호)라는 보고서를 보면, 외환위기 이전인 1975~97년간의 가계와 기업 소득의 연평균 성장률은 각각 8.1%, 8.2%로 거의 같았다. 하지만 2000~2010년 사이 양 부문의 성장률은 2.4%, 16.4%로 무려 8배에 이르는 격차를 보였다.
줄어든 가계 영역 내부에서도 양극화가 진행돼 중산층이 급격히 얇아지고 있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가 2010년도 국세청의 소득세 자료를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 소득 상위 1%가 전체 개인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1.5%, 상위 10%는 42.4%인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90%가 60%도 안 되는 전체 소득을 놓고 다투는 셈이다.
이처럼 심각한 소득 양극화 상황에서 가계는 1,0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와 과도한 교육비 지출에 시달리고 있다. 국내 가구의 소비지출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8.3%에서 2011년 12.6%로 늘었다. 외환위기 전 20%대였던 가계 저축률도 3%대로 급감해 비상 상황에 대비한 완충장치도 없다.
가계 구매력 높여야 서비스업 수요 창출
일부 고소득층을 제외하고 대부분 가계가 이렇게 적자와 빚에 시달리고 있어 내수산업도 장기간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00~2010년 사이 한국경제의 경제성장률과 내수증가율 간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 네 번째로 크고, 경제성장률과 가계소득 증가율 간 격차는 OECD 내에서 가장 크다.
결국 내수를 활성화해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가계 구매력의 증가가 선행돼야 하고 더 이상시장 기능에 맡기지 말고 국가가 나서야 할 상황이다. 최저임금을 높여 세계 최고 수준인 저임금 근로자 비중을 낮추고, 은퇴자가 영세 자영업으로 이동하지 않도록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교육비, 거주비, 의료비 등 생활에 필수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부담을 늘리고 공교육의 효율성을 높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적자원을 육성해야 한다. 특히 가계와 기업 간, 계층 간의 불균형한 부의 재분배 상황을 교정할 수 있는 적극적 조세 정책이 필요하다.
가계에 소비 여력이 생기면 공연도 보러 가고 관광도 다니고 외식도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충분한 수요가 생긴 분야를 기업이 놔둘 리 없다.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이런 분야에 자연스레 자본이 투자되고, 毒弔?경제를 갖추게 되면 생산성도 향상된다. 이렇게 되면 생산요소 측면에서는 '자본'과 '총요소생산성'이, 수요 측면에서는 '민간소비'와 '내수'가 늘어나면서 잠재성장률을 밀어 올리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본이 부족하던 시절 정부가 정책자금과 세제 혜택 등을 특정 산업 분야에 몰아줘 육성하던 방식은 유효기간이 지났다"면서 "총수요를 늘리고 노동생산성이 향상될 수 있도록 바탕을 조성해 산업이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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