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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징악의 탈 쓴 막장 일일극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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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징악의 탈 쓴 막장 일일극의 법칙

입력
2014.01.0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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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징악, 인과응보, 사필귀정 등을 주제로 하는 드라마는 죄를 지으면 벌을 받거나 옳은 것이 이긴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악행과 불륜을 흔히 드러낸다. 그래서 이들 한자성어가 지닌 좋은 뜻은 사라지고 자극과 황당함만 남는 경우가 많다.

지상파 3사의 아침ㆍ저녁 일일극이 그렇다. KBS는 3일 드라마 두 편을 종영했다. 140부작 아침일일극(아침극) 'TV소설 은희'(이하 은희)와 93부작 저녁일일극(저녁극) '루비반지'다. '은희'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세 가족의 엇갈린 운명을 그린 시대극이다. '루비반지'는 교통사고 이후 두 자매의 얼굴과 운명이 바뀐다는 비현실적인 내용을 담았다. 언뜻 두 작품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은 똑같은 법칙을 이용해 시청자를 끌어들였다. 극악무도한 행위를 일삼는 악한 주인공이 종국에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 구조로 말이다.

'은희'에서는 친구에게 살인 누명을 씌운 차석구(박찬환)가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친구의 딸 은희(경수진) 가족을 상대로 악행을 저질렀다. 살인교사, 살인미수, 증거인멸, 사기 등 차석구의 온갖 범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은희의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했던 정태(정민진)가 깡패들이 휘두른 각목에 맞아 숨지는 모습도 여과 없이 내보냈다. '루비반지'도 만만치 않았다. 언니 루비(이소연)와 얼굴이 바뀌자 인생까지 빼앗으려는 동생 루나(임정은)는 사기 결혼도 모자라 폭행을 청부하고 협박을 일삼았다. '은희'와 '루비반지'는 결말도 비슷하다. 악한 석구와 루나가 정신이상으로 정신병원에 갇히는 설정이다. 마치 같은 연출가와 작가가 그려낸 듯 하다.

종영을 앞둔 SBS 아침극 '두 여자의 방'도 뒤지지 않는다. 호텔 사장의 자리가 탐난 은희수(왕빛나)는 민경채(박은혜)의 가족을 내쫓고 살인을 서슴지 않는 악녀로 등장한다. 그는 결국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고 자살까지 시도하면서 막장의 끝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이들 드라마는 시청률이 높은 편이다. '은희'와 '루비반지'는 각각 17.7%(이하 닐슨코리아 제공)와 '21.8%'로 끝났고 '두 여자의 방'도 시청률이 15% 내외다. 방송사는 아무리 논란이 커도 일정 정도의 시청률을 만들어내는 살인, 청부 살인·폭행, 협박 등의 범죄와 야릇한 출생의 비밀 등의 소재를 버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막장 논란 일일 드라마가 계속 전파를 타는 데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무관심이 한몫을 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난해 아침극과 저녁극에 가한 제재는 3건뿐이다. 자신의 과거를 감추기 위해 남을 무고하고 성추행, 방화, 살인 등을 교사하는 내용으로 가득한 MBC 아침극 '사랑했나봐'에는 다소 경미한 '주의'를 내렸고 KBS 저녁극 '지성이면 감천'에는 타인의 유전자 감식을 의뢰하는 장면에 '권고' 조치를 내렸다. MBC 저녁극 '오로라 공주'에는 계모가 유부남과 불륜 관계인 의붓딸에게 위장 임신을 부추기는 장면을 내보냈다는 등의 이유로 '관계자에 대한 징계 및 경고'를 내렸다. 방통심의위는 이들 드라마만 제재했을 뿐 다른 드라마는 수수방관했다. 지난해 2월 종영한 SBS 아침극 '너라서 좋아'는 악녀 양수빈(윤지민)을 땅에 묻기 위한 굴삭기가 등장하는 엽기적인 설정으로 구설에 올랐고 '은희'에 앞서 방영된 'TV소설 삼생이'에서는 바뀐 딸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사기진(유태웅)이 살인을 저지르고 자살하는 장면이 브라운관을 채웠다. 그러나 이들 드라마는 단 한 차례도 방통심의위의 제재를 받지 않았다.

방송계의 한 관계자는 "방송사가 출연료와 제작비가 많이 드는 미니시리즈보다 신인 배우를 쓰기 때문에 출연료가 적고 제작비 역시 많지 않은 아침ㆍ저녁 일일극을 선호한다"며 "저비용 고효율인 일일극에 자극적인 내용이 난무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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