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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쪽빛보다 푸르게] <17> 가야금 주자 안숙선과 자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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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쪽빛보다 푸르게] <17> 가야금 주자 안숙선과 자녀들

입력
2014.01.05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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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소리꾼, 영원한 현역9살에 국악 입문, 소리·산조·무용 병행가야금 병창으로 49살에 인간문화재"판소리의 진정한 발전적 후계는 창극"● 여러 개의 국악 밥상을 차리다판소리 다섯 마당과 가야금 병창 바탕美 재즈 그룹·김덕수 사물놀이와 실험"퓨전 이름으로 전통 훼손은 안 돼"● 국악 홀대 풍토에 맞서다"어린이집·유치원부터 가르쳐야"안숙선 창극 아카데미서 꿈나무 키우고판소리 가족용으로 축약하는 작업 중

판소리 목청과 전통악기가 한 몸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교직하며 서로를 희롱한다. 거기에 고수의 추임새까지 따르니 우당탕탕 물굽이가 치솟는 듯 하다. "얼씨구" 소리가 안 나오고는 못 배긴다, 안숙선(65)씨는 바로 그 가야금 병창으로 인간 문화재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

자택 연습실에서 딸, 손녀와 함께 '풍년가'로 호흡을 맞추니 여느 국악관현악단이 부럽지 않다. 얼마 전 국립극장에서 두 남성 소리꾼과 펼쳤던 제야 공연 무대에서 객석의 환호작약을 이끌어 냈던 바로 그 소리다.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소리꾼이자 창극 스타이며,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 지난 4월 국립극장에서 문을 연 '안숙선 창극 아카데미'에 관한 공식 자료의 어투는 다소 호들갑스럽지만 현장에서의 반응에 비긴다면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 지난해 국립극장 안호상 극장장에게 건의해 만들어진 기관에 그는 아무 직함 없이, 가끔 나가 꿈나무들을 살펴본다.

국립창극단 단장,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그만 뒀지만 국립국악원 예술감독에, 남원 춘향제전 축제 위원장이라는 자리는 맡고 있으니 여전히 왕성한 현역이다. "가인(歌人) 안숙선… (중략) … 그대 육신은 우주의 음(音)을 담은 그릇, 쭈그러들어 작아진 몸에서도 오히려 음량이 자유자재로…(후략)" 응접실 한 켠에는 그에게 주는 헌시가 숨은 듯 조그맣게 걸려 있다. 소리 인생 56년에 대한 압축으로는 적절해 보인다.

그와 소리는 한 몸이다. 평상 언어로 대화를 하는 가운데서도 말소리는 고저장단이 두렷하다. 게다가 판소리 할 때의 발림처럼 동작이 선명하니 때로는 마치 판소리를 듣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킨다. 여전히 카랑카랑한 목청처럼 기억도 선명하다. "어려서부터 남원에서 소리와 산조, 무용을 병행해 왔어요. 남원에서도 어려서 병창을 한 사람은 별로 없었는데 두 가지를 능히 할 수 있었던 이모의 지도와 나의 즉흥성이 합해진 거지요."

9살 때 이모 강순영에 의해 국악에 입문하고 신관용류 가야금 산조를 익힌 뒤 22살에 상경, 명인 함동정월에게서 직접 전수 받은 적자다. 또 만정 김소희한테서 소리를 배웠고, 일찍이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만정과 함께 현지공연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의 실력였다. 이후 쭉 병창을 배우다 이수_전수 조교를 거쳐 49세 때 인간문화재로 공식 지정됐다. 바로 안숙선 가야금 병창의 약사다.

"가야금 병창은 소리와 연주가 서로 엇박으로 나가다 맞춰주는 게 묘미예요." 2003년 발표한 음반 '가야금 병창_안숙선'(ene media 발매)에서는'녹음방초''심청가' 등을 통해 그 맛을 생생히 살려낸다. 그 병창의 역사는 상경한 뒤 박귀희와의 만남으로 완성된다. 그를 보고 재목임을 직감한 박귀희가 단번에 자신의 전수생이 되라고 했고, 팍팍한 서울 생활에 한 가지만 해서는 힘들 거라는 요량으로 병창에 본격 뛰어들었다.

"당시는 병창 레퍼토리가 단가 아니면 판소리 중의 한 대목뿐이었어요. 옛 선인들이 남긴 음반을 주요 자료로 해 거기서 더 짰는데, 신민요나 선생님이 개발한 병창 레퍼토리를 내가 사람들 앞에서 불렀죠." 맑고 튼튼한 성음에 의한 소리가 가야금 연주와 어긋나는 듯 들어 맞아 가는 병창의 맛에 사람들이 빠져든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언어를 매개로 하는 만큼 가야금 병창은 듣는 이의 감성에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판소리에 근거한 병창 작품은 노대가의 숨어 있던 창작열을 그대로 자극했다. "유독 빛나는 토막소리를 선생님들이 엮어 냈듯 말이에요."

목청을 앞세운 그의 도전정신이 극적으로 형상화된 것이 1989년 미국의 재즈 그룹 레드선과의 작업이었다. '수궁가' 등 흥미로운 서사를 근간으로 해 재즈, 김덕수 사물놀이와 벌였던 일련의 실험을 그는 "국악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밥상 여러 개 차려 본 것"이라고 설명한다. 전통, 즉 판소리 다섯 마당과 가야금 병창을 바탕에 두고 대중과 함께 가자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편이었다. "김덕수의 여러 시도는 결국 판소리의 더늠을 확장한 것인데 재즈를 기본 어법으로 하는 미국 그룹 레드선의 천재성이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어요."

그러나 그 쪽으로는 일단락됐다. 전혀 이질적인 장르와의 실험은 과격해 보일 정도였다. "판소리 다섯 바탕의 참 의미를 찾는 게 보다 큰 일이죠. 그건 끝이 안 보이는 길이지요." 이제 그는 말한다."실험은 가능하나 문제는 근간의 핵심이 들어 있느냐 하는 것이죠. 지금은 그런 거 안 해요."근저에 판소리 다섯 바탕과 민요의 본질이 살아 있느냐 하는 것이 절대적 기준이 돼야 한다는 말에서는 결연함마저 보인다. 이 대목에서 거문고 주자인 딸 최영훈(39ㆍ국립창극단 기악부)씨는 "(요즘은)너무 빠른 것들만 찾는다"며 이른바 퓨전의 이름을 내건 과시적 실험들을 은근히 겨냥했다. 최대의 원칙은 전통에 훼손 없어야 한다는 것이라는 데 모녀는 철석 같다.

이 대목에서 기자는 "퓨전은 여러 장르의 임의적 융합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는 퓨전의 기수 존 맥러플린의 명제를 떠올렸다. 후배들을 무색케 하는 실험 정신으로 깊은 인상을 준 안씨였기에, 판소리 정립이라는 '최종 심급'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그는 "이제 내 음악 연구를 더 하고 싶다"고 했다. 가사 속에 숨어 있는 깊은 뜻을 새삼 파고드는 것은 그 시작이다. "판소리 사설집을 찬찬히 보며 고사성어 등 중국풍의 사설을 연구 중이에요. 소싯적에는 (책은)안 보고 독공만 했는데…." 그러나 지나친 한문 투의 문장이 문제다. 한국의 위인 이야기나 시인묵객들이 남긴 순 한글의 텍스트를 계속 발굴할 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다. "예를 들어 장수군에서 발굴해 낸 논개 이야기를 텍스트로 택했던 작창(作唱)작업 같은 거죠."

결국 문제는 창극이다. 창자와 고수의 2인 편성을 확장, 수십 명이 연행하는 대규모 판소리인 창극은 판소리의 진정한 발전적 후계라는 믿음이다. 실제로 '청''춘향2010''적벽가' 등 국가 브랜드로 지정 받은 일련의 국립창극단 작품들은 이후 지방 예술단이 따라 하는 모델로 굳었다. 그 와중에 신디사이저 등을 사용한 서양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진행하는 적극적 실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크로스오버 피아니스트 양방언은 안숙선의 권유로 국악 풍의 연주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후 판소리나 창극에 등장하는 양악기 반주가 자연스런 풍경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영화'서편제'에서 노년의 눈 먼 송화가 신세를 한탄하면서 뽑아 올리는'심청가'의 한 대목이 양방언의 양악기 반주에 맞춘 안숙선의 절창이다. 요즘의 창극 무대가 전통 반주로 회귀했지만 안숙선은'메디아'나 '장화홍련'등의 실험적 무대를 업적으로 평가한다.

"뮤지컬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현장 감흥이죠." 창극의 재미에 대한 영원한 현역, 안씨의 확언이다. 그는 지난해 3월 국립창극단의 '서편제'에서는 노년의 송화를 맡아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판소리 무대로 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시대 정신인 동서양의 드나듦을 어떤 식으로 구현할 것인지는 영원한 숙제다. 지난해 국립창극단의 송년 무대로 관객을 끌어 모은'배비장전'은 앞서 2012년 "배꼽 잡는 무대"로 입소문이 자자하게 퍼졌던 작품으로 반주 음악이라는 문제에 대한 최근의 답안이었다. 전통악기만으로 한 반주가 훨씬 편하고 자연스럽다는 결론을 결정적으로 이끌어낸 계기였다. 결국 우리 소리의 본령으로 온 것이다. "외국 연출가들은 우리 고유 악기로만 이뤄진 반주 특유의 담백한 힘에 매료돼요. 예를 들어 종묘제례악 '전폐희문'이나 판소리의 원형을 듣고 전율마저 느낀다고 해요."

"우리 창극은 우리 악기로 완벽한 표현이 가능하다. 여타 악기는 보완적 수단일 뿐"이라는 어머니의 말을 딸은 "양악기로 국악의 묘미인 꺾는 소리 등을 국악에서 배워가는 실정"이라고 받는다. 그러나 문제는 미래의 일이다. 앞으로 누가 판소리를 듣고 창극을 볼 것인가, 생각하면 솔직히 암담해지는 두 사람이다.

"어린이집, 유치원부터 우리 악기와 우리 장단을 가르쳐야 해요." 우리 소리를 배운 손녀들이 어린이집에 갔더니 교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라는 것이다. 왜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는 안 했느냐며. 그 같은 풍토에서 자란 후손들이 판소리나 창극 무대를 찾기를 어찌 기대할 것이냐는 두 사람의 반문에 솔직히 달리 해줄 말이 없다.

그러나 안숙선 창극아카데미는 만연한 국악 홀대 풍토에 맞서 나갈 최소한의 버팀대다. 특히 방학 중에는 그 자리를 통해 어린이창극을 하루 2회씩 선보였더니, 이후 펼친 국악관현악단의 '국악보따리'는 매진 사례를 빚었던 기억은 큰 힘이다. 그 같은 선순환 구조가 잇달아 펼쳐지리라는 기대가 현실적 설득력을 갖는다.

안씨는 "일고여덟 시간은 족히 걸리는 판소리를 눈대목만 맛깔 나게 추려 가족용으로 축약하는 작업을 하는 중"이라 했다. 영훈씨는 "어머니가 만들어가면 그게 곧 길"이라 받는다. 손녀들은 초롱초롱 귀 기울이고 있었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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