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주부 최모씨는 지난 연말 국내 유명 오픈마켓 사이트에서 자녀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려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히느라 힘들었다. "결제 툴이 업데이트됐으니 플러그인을 다시 받으라"는 공지를 보고 '액티브X' 결제 프로그램을 설치했지만, 설치 후에 접속해도 계속 같은 메시지가 나오면서 결제가 중단되는 일이 무한 반복됐기 때문이다.
최씨는 결국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한 뒤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상품을 결제했다. 며칠 후 PC에서도 결제 프로그램이 정상 작동됐지만 그 후로 최씨는 PC에서 가격 비교를 해 상품을 장바구니에 넣은 후 스마트폰을 통해 결제하고 있다.
외국의 쇼핑 사이트는 그렇지 않다. 미국 1위 온라인유통업체 아마존은 한번 카드 번호를 입력해 두면 다음 구매 때부터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결제가 끝나는 '원클릭' 결제로 전자결제의 혁신을 이뤘다. 미국뿐 아니다. 대부분의 해외 사이트에서 카드 번호 입력만으로 결제를 할 수 있다.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소비자가 어떤 물품을 구매하려 할 때, 구매 절차가 복잡할수록 최종 '결제' 버튼을 누르기 전에 취소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온라인 유통업체의 매출이 높아지는 것은 카드사에게도 이익이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국내 카드사들은 액티브X 설치를 하지 않는 결제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카드사들은 액티브X 설치를 요구하는 이유에 대해 전에는 금융당국의 규제로 탓을 돌렸다. 하지만 지난해 인터넷서점 알라딘이 금융당국의 요구수준을 준수하면서도 액티브X 절차가 간단한 결제방식을 선보이자, 카드사들은 "카드 유효기간이 결제대행사 서버에 저장된다"는 이유를 들어 참여를 거부했다. 당시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와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설전이 트위터를 통해 설전을 주고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커들은 대게 카드번호를 얻어내기 위해 굳이 보안 수준이 높은 웹사이트를 해킹하기보다는 보안 수준이 낮은 일반 가맹점의 포스(POS) 시스템을 노리기 때문에 전자상거래 사이트에 카드번호를 저장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실제로 최근 미국 2위 소매점 타켓이 해킹돼 무려 4,000만명의 카드번호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POS 시스템만 해킹된 것이기 때문에 실제 마트에 와서 카드를 긁은 고객들의 카드번호만 유출됐지, 온라인 구매고객은 피해가 없었다.
카드사들이 지금처럼 카드번호가 가맹점이나 대행사에 저장되는 것을 무조건 거부한다면 아마존이나 해외 전자상거래 사이트 같은 원클릭 결제가 우리나라에는 도입될 수 없다. 지난해 말 아마존이 올해 초 국내 진출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아마존이 액티브X를 없애주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줄을 이었다. 만약 아마존이 국내에 진출해 미국과 같은 원클릭 결제를 사용하고, 이를 거부하는 국내 카드사 대신 비자나 마스터 등 해외 카드만 받아 달러로 환산해 결제한다면 실제 국내 온라인 결제시장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한 벤처 창업가는 "우리나라에서 결제가 필요한 인터넷 서비스를 만들면 액티브X과 복잡한 결제절차 때문에 글로벌 시장 진출이 어렵다"면서 "차라리 미국에 본사를 두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존 국내 진출을 계기로 국내 카드사 주도의 결제 시장이 바뀐다면 국내 벤처인들에게는 아이폰의 국내 진출과 같은 혁명적 기회가 될 것"이라면서 "이동통신사가 허락한 응용 프로그램만 만들던 국내 모바일 개발사들이 아이폰 국내 진출 이후 앱스토어에 독립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판매하고, 해외 앱스토어에 진출해 콘텐츠 수출도 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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