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시향의 올해 첫 연주회의 타이틀은 '정명훈의 영웅의 생애: 로맨틱 클래식 시리즈Ⅰ'이다. 예정된 연간 공연 일정 중 몇 가지를 묶어 파는 각각의 패키지에만 제목을 붙여 왔던 서울시향은 관객들이 더 쉽게 알 수 있도록 지난해부터 각 공연에 별도의 타이틀을 붙이고 있다. 9일 공연은 베토벤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현대음악 작곡가 진은숙의 곡을 연주한다는 이유로 옛 것과 현재의 만남을 의미하는 '올드 앤 뉴'라고 제목을 붙였다가 '정명훈의 영웅의 생애'로 바꾼 케이스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 기념 프로그램에 포인트를 맞추기 위해서다.
#3월 19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공연되는 첼리스트 문웅휘, 피아니스트 이효주의 듀오 리사이틀 제목은 '프렌치 로스트'다. 색채감을 중시하는 프랑스 음악의 감각을 극대화해 오감을 자극하는 음악을 선보인다는 취지를 담았다. 드뷔시, 풀랑크 등 프랑스 작곡가의 곡들로 구성한 이날 프로그램을 통해 진하고 깊은 맛으로 커피를 볶는 프렌치 로스트처럼 깊이를 잃지 않는 무대를 만들겠다는 의미로 연주자가 직접 아이디어를 내 붙인 제목이다.
클래식 음악계에 때아닌 작명 바람이 불고 있다. 연주자의 명성에 기대 이름 뒤에 독창회나 독주회를 일컫는 리사이틀, 또는 내한공연 등을 덧붙였던 기존 연주회 제목 대신 광고 카피처럼 통통 튀는 타이틀을 내거는 사례가 늘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활용하는 젊은 관객에게 효과적인 감성적 메시지 전달이 늘고 있는 셈이다.
구매동기 유발 숫자를 찾아라
3월에 있을 일본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의 연주회 제목은 '유키 구라모토 내한 15주년 기념공연, 회상'이다. 음악가로서 그의 데뷔는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첫 한국 공연은 15년 전인 1999년에 이뤄졌다. 따라서 이번 공연은 그의 한국 데뷔 15주년을 기념하는 무대다. 매년 내한 공연을 한 그의 2006년 공연 타이틀은 '음반 데뷔 20주년 기념 스페셜 콘서트'였고 2009년 공연은 '한국 데뷔 10주년 기념공연'이었다. 확실한 티켓 구매의 동기부여가 되면서 관객이 납득할 만한 공연 제목의 기본형은 숫자 활용이다. 연주자의 데뷔 연도를 활용하는 방식이 가장 흔하다.
유명 작곡가의 탄생을 기념하는 연주회도 태생적으로 숫자가 공연 타이틀에 따라 붙는다. 지난해 베르디ㆍ바그너 탄생 200주년, 브리튼 탄생 100주년 기념 연주회가 꾸준히 열렸듯 올해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탄생 150주년 음악회가 각종 공연 포스터에 다양하게 등장할 예정이다.
제목에 드라마를 담다
지난해 하반기에 열린 '셰익스피어 인 클래식'과 '바흐, 피아졸라를 만나다'는 완전히 매진돼 공연기획사 스톰프뮤직의 가장 성공적인 공연들로 기록됐다. 해설 음악회여서 상대적으로 관객에게 접근하기 쉬웠던 이유도 있지만 연주자의 이름 대신 색다르게 내건 제목도 한몫 했다는 게 기획사의 판단이다. '셰익스피어 인 클래식'에는 피아니스트 윤홍천과 테너 김재형, '바흐, 피아졸라를 만나다'에는 아르헨티나의 반도네온 연주자 페르난도 레지크 등 유명 음악가들이 출연했다. 스톰프뮤직의 관계자는 "SNS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비중이 커지면서 짧지만 시각적으로 강렬한 이미지와 공연의 스토리를 담은 제목을 짓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KBS교향악단은 아예 KBS 클래식 FM 작가가 전담해 올해 공연의 부제를 붙였다. 음악감독 요엘 레비의 올해 첫 무대인 24일 677회 정기연주회에는 '내딛는 힘찬 발자국-교향악으로 승부하다'라는 부제가 붙었다. 김지현 'FM 음반가이드' 작가는 "선곡한 음악감독의 취지가 따로 있겠지만 관객 입장에서 음악회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제목에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수식어 불필요한, 이름만으로 매진되는 연주가
물론 실력과 대중적 인지도를 겸비한 해외 유명 음악가의 경우는 이 같은 그럴싸한 타이틀 없이도 늘 매진 사례를 이루기도 한다. 3월로 예정된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의 연주회는 유별난 제목 없이도 지난해 11월 이미 티켓이 매진됐다. '예프게니 키신 리사이틀'이라는 제목의 이 공연에 붙은 부제는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다 키신 리사이틀이라면'이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