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쇼트트랙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16년 만에 '노골드'의 수모를 당했다. 마땅한 에이스가 없었고, 심판 판정도 아쉬웠다. 여자 500m, 1,000m, 1,500m, 3,000m 계주의 금메달은 영원한 맞수 중국 선수들이 싹쓸이했다. 한국 빙상계는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곧바로 구세주가 등장했다. '차세대 여왕' 심석희(17ㆍ세화여고)가 주니어 무대에 이어 시니어 무대까지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심석희는 국제대회 데뷔전인 2012~13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1차 대회에서 1,000m와 1,500m, 3,000m 계주의 금메달을 휩쓸었다. 1,000m에서는 1분26초661의 세계 신기록까지 세웠다. 이처럼 한국 여자 쇼트트랙에 모처럼 '괴물'이 탄생하자 이번에는 중국 대표팀이 바짝 긴장하는 모양새다. 한국은 소치에서 밴쿠버의 아픔을 두 배 이상 갚아주겠다는 각오다.
이제는 심석희 시대 VS 최다 금메달 보유자 왕멍
심석희의 라이벌은 역시 중국 선수들이다. 그 중 베테랑 왕멍(29ㆍ중국)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왕멍은 남녀 쇼트트랙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올림픽 금메달을 보유하고 있다. 2006 토리노 올림픽 1개, 2010 밴쿠버 올림픽 3개 등 총 4개의 금메달을 수확, 전이경(한국)과 함께 이 부문 공동 선두다. 하지만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도 따내며 은메달 없이 동메달 1개뿐인 전이경에 앞선다.
세계선수권 금메달 개수(18개), 월드컵 시리즈 금메달 개수(81개)도 모두 왕멍이 1위다. 남자 선수 가운데 월드컵 금메달이 가장 많은 안현수(51개ㆍ러시아명 빅토르 안)도 왕멍에 비하면 30개가 부족하다.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등 왕멍이 선수 생활을 하면서 수확한 총 메달수는 200개가 훌쩍 넘는다.
여자 500m 세계기록도 왕멍이 갖고 있다. 지난해 1월 독일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42초597로 새 역사를 썼다. 올림픽 기록 역시 밴쿠버 올림픽에서 42.985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골인한 왕멍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다만 왕멍의 주종목은 500m와 1,000m다. 차세대 여왕 심석희는 1,000m와 1,500m가 세계 랭킹 1위다. 중국의 1,500m 선수 가운덴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대표팀 동료인 저우양(23)을 심석희의 경쟁 상대로 꼽을 수 있다.
메달 수는 왕멍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지만, 현재 기량 면에서는 심석희가 더 낫다. 데뷔전에서 3관왕을 차지한 그는 2013~14시즌 월드컵 4차 대회까지 무려 10개 대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계 여자 쇼트트랙에 '심석희 시대'가 활짝 열린 셈이다.
심석희는 '제 2의 전이경'으로 불리면서도 키는 전이경(163㎝) 보다 10㎝가 크다. 한국 선수로는 드물게 173㎝의 장신이다 보니 중국, 서양 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다. 통상 체구가 작은 선수들이 갖고 있는 순발력과 유연성 또한 타고 났다. 심석희는 소치에서 "최대한 많은 메달을 따내는 게 목표"라며 다관왕을 정조준 하고 있다.
전이경 진선유 심석희의 공통점은
한국 여자 쇼트트랙은 전이경(38), 진선유(25)가 에이스 노릇을 하며 세계 정상을 지켰다. 전이경은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과 1998년 나가노 올림픽에서 1,000m, 3,000m 계주 금메달을 잇달아 목에 걸었다. 진선유는 2006년 토리노 올림픽 1,000m, 1,500m, 3,000m 계주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이 둘은 18세의 나이로 올림픽에 출전, 최정상에 섰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표팀 막내로서 귀여움을 독차지 하면서 스케이트화만 신으면 매서운 승부사 기질을 보였다.
심석희도 마찬가지다. 1997년 1월30일생으로 17세의 나이에 생애 첫 올림픽 무대에 선다. 전이경, 진선유 보다 한 살이 적지만 같은 고등학생 신분으로서 금메달을 노린다. 여자 쇼트트랙은 2차 성징이 완성되기 전인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사이에서 기량이 일취월장한다. 당연히 그 때가 성적도 가장 좋다. 빙상관계자들은 "심석희가 분명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라갈 것이다. 올림픽 금메달은 무난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에 반해 왕멍은 1985년생으로 노쇠화에 접어 들었다. 여전히 500m에서는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1,000m, 1,500m에서는 심석희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왕멍의 1,000m 개인 최고 기록은 1분29초213이다. 1,500m에서는 2분22초124가 가장 빨리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의 기록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매일 7시간씩 강훈련을 이어가고 있지만, 심석희의 1,000m최고 기록(1분26초661) 1,500m 최고 기록(2분17초513)에 모두 미치지 못한다. 왕멍에게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좌우명을 갖고 있는 심석희가 분명 버거운 상대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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