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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정상 만나 영토문제 30년간 유예한 뒤 협력 쌓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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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정상 만나 영토문제 30년간 유예한 뒤 협력 쌓아야"

입력
2014.01.0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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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잦아들지 않는 갈등영토문제 양보하면 정치적 궁지누구든 태도 바꿀 수 없어 충돌中 해양 팽창 정책이 최대 불안● 중일 사이에서성장하는 中은 기회의 땅日 경제·대북문제서 파트너우리에겐 양국 간 균형이 중요● 미중 사이에서G2경쟁, 위기 아닌 꽃놀이패양자택일은 어리석은 것양쪽 모두와 관계 심화시켜야

국내 최고의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국립외교원을 이끌고 있는 윤덕민(55ㆍ차관급) 원장은 한중일 3국이 경제협력을 강화하면서도 반목이 줄지 않는 '아시아 패러독스'의 해법으로 "한중일 정상이 만나 영토문제를 30년간 모라토리엄(유예)해서 협력의 문화를 축적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윤 원장은 "중일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분쟁이나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서 보듯 동북아의 영토문제는 물고 물리는 상황이어서 언제든 무력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며 "3국이 영토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대신 경제공동체를 만들어 협력하는 곳에 이익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되면 영토문제를 해결할 지혜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원장은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는 원인에 대해 "가장 큰 변수는 중국의 부상"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중국이 커지면 건강한 일본이 있어야 그 틈에서 우리가 나름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다"며 "따라서 일본의 역사 퇴행적인 행보에 대해서는 준엄하게 대처하되 민간이나 전략적 차원에서 일본과의 교류는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일본의 집단적자위권 논란에 대해서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권리이기 때문에 이걸 갖고 얘기하면 우리의 입장이 옹색해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위권을 빌미로 제한 없이 군사력을 사용하려는 일본의 적극적 평화주의를 억제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한반도를 둘러싼 초강대국(G2) 미국과 중국간 경쟁구도를 "우리에겐 위기가 아니라 꽃놀이 패"라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가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추진하는 것은 진영이 단절돼 있던 냉전시대의 사고"라며 "두 개의 태양 중에 하나를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고 조언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동 국립외교원장실에서 진행됐다.

-한중일간 갈등은 왜 잦아들지 않나.

"한일간에는 독도, 중일간에는 센카쿠열도라는 민감한 영토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서해에 선포하면 한중 갈등도 격해질 것이다. 이해관계가 워낙 첨예하게 부딪치기 때문에 3국이 원치 않아도 여차하면 무력 충돌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중일 정상 누구든 영토문제를 양보하는 순간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어 태도를 바꾸기 쉽지 않다."

-아시아 패러독스를 깰 수는 없나.

"과거 덩샤오핑(鄧小平)의 전례가 있다. 덩샤오핑은 일본과 수교하면서 영토문제는 후세에 맡기자며 유보했다. 우리도 현 상태에서 영토문제를 서로 제기하지 말고 경제공동체를 만드는데 주력하는 것이다. 한국이 주도적으로 제안할 수도 있다. 한 세대인 30년 정도 지나면 동북아에도 협력의 문화가 생기지 않겠나. 박근혜 대통령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밝힌 만큼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쥘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왜 중국이 동북아의 가장 큰 불안요인인가.

"중국은 자신들의 핵심이익을 내세워 계속 해양으로 팽창하려 한다. 심지어 남중국해의 80%를 영해로 주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해 동중국해의 70%를 관할에 포함시켰다. 구역이 너무 넓은 게 문제다. 또한 이곳을 통과하는 모든 항공기는 중국에 통보하도록 했다. 다른 국가들의 방공식별구역과 개념 자체가 다르다. 보통국가로 탈바꿈하려는 일본과 장성택 처형 이후 리더십이 불안정한 북한도 동북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지만 최대 변수는 중국이다."

-주변국과 마찰이 불가피한가.

"공세적 현실주의라는 국제정치 이론이 있다. 국가가 힘이 커지면서 자기가 방어해야 할 영역이 늘어나는 현상이다. 가령, 부자가 되면 집에 담도 쌓고 CCTV도 달고 경비원도 고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1910~20년대 일본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만주와 동남아로 진출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경험이 중국에서 반복되고 있다.

-일본을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동북아 안정을 위해서는 중국과 일본간 균형이 중요하다. 성장하는 중국은 우리에게 기회의 땅이다. 따라서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일본의 힘이 약해질수록 한국은 중국의 힘을 혼자 상대해야 하는 처지가 될 수 있다. 일본은 경제적 측면과 대북정책 모두에서 우리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파트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시끄러운데.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아베 총리의 퇴행적인 역사인식이 너무 심각하다. 선을 넘어선 것막?보인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이 한편이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지만 일본이 이런 행동을 보일수록 고립은 심화될 것이다. 때문에 과거와 달리 미국마저 즉각 '실망'을 나타내며 돌아섰다. 이는 우리가 기대하는 건강한 일본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한일관계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데.

"1965년 수교 이후 한일관계가 어려울 때마다 고노 담화(93), 무라야마 담화(95), 김대중-오부치 선언(98), 칸 총리 담화(2010) 등 역사를 직시하려는 일본의 노력이 있었다. 아베 총리는 신사 참배로 이 같은 근본을 뒤흔들고 있다."

-이처럼 일본이 거꾸로 가는데 집단적자위권을 수용할 수 있겠나.

"집단적자위권과 역사문제는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 둘을 결부시키면 해결이 어렵다. 일본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주권을 회복한 이래 국제사회에서 집단적자위권을 인정받았다. 다만 평화헌법과 전수(專守)방위 원칙에 따라 일본 스스로 권한 행사를 자제해 온 것이다. 문제는 이를 확대 해석해 군사력의 제한을 풀고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 경우다. 아베 총리가 표방한 이른바 적극적 평화주의는 그런 요소들을 숨겨놓고 있다."

-예를 든다면.

"아베 총리의 간담회에서 나온 보고서들을 보면 자위대가 페르시아만에서 기뢰를 제거하거나, 유엔의 연합군 일원으로 참전을 하거나, 테러세력과의 분쟁에 개입하는 등 매우 광범위하게 역할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집단적자위권 자체보다는 적극적 평화주의와 결합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 일본에 제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의 대응은.

"일본은 1998년 주변사태법을 통해 자위대가 한반도 후방지역에서 미군에 대한 지원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하지만 이후 우리 정부는 적극적으로 일본과 협의를 하지 않았다. 유사시나 전쟁상황이 되면 자연스레 해결될 것으로 본 것 같다."

-정부가 방치한 셈인가.

"당시 대북ㆍ대중관계에 주력하면서 대일관계를 공백으로 놔뒀다. 문제는 이후 미일동맹의 정의가 바뀌면서 여태껏 기지만 제공하던 일본이 한반도 주변 지역에서 주한미군에 대한 여러 후방 지원 활동까지 하게 된 것이다."

-집단적자위권은 우리에게 독인가.

"우리 정부가 일본에 집단적자위권을 요청한 적도 있다. 박정희 정부 때다. 당시 일본의 안보역할 강화를 주장하며 40억 달러의 안보경협차관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이 거부했다. 지금과 반대의 상황이다."

-자위대가 남수단 한빛부대에 실탄 1만발을 지원했는데.

"긴급성과 인도적 측면의 사안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과도하게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의 배상 판결을 앞두고 있다. 한일 청구권 협정을 부정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데.

"사법부의 판결로 국가간 외교행위가 흔들리지 않도록 사법부와 행정부간 협의를 통해 바람직한 결론을 내리는 시스템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한일수교 당시 받은 일본에서 받은 5억 달러로 경제발전을 이뤘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 기금을 만들어 배상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일본도 양심이 있다면 호응해 올 것이다."

-미중간 경쟁으로 한국의 입지가 좁아진다는 지적에 동의하나.

"오히려 그 반대다. 미국은 한국을 린치핀(핵심축)이라고 부른다. 중국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6월 박근혜 대통령을 초청해 지상 최대의 쇼로 환대했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포위망을 뚫기 위해,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을 상대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의 상황을 구한말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역으로 보면 우리는 굉장히 좋은 카드를 갖고 있는 셈이다."

-미중 사이에서 균형정책은 필요한가.

"미중 양국은 경쟁하지만 복잡한 상호의존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네트워킹을 통해 양쪽 모두와의 관계를 심화시켜야 한다. 양자 선택처럼 바보 같은 게 없다. 우리가 과거처럼 약하지는 않지만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추진할 만한 힘은 갖고 있지 않다."

-북한 김정은의 방중 전망은.

"중국은 장성택의 처형에 분노하면서도 북한의 안정을 절체절명의 화두로 안고 있다. 손에 피를 묻힌 김정은과 악수해야 하는 시 주석의 고민이 많겠지만 북한이 불안하다고 판단된다면 김정은을 부를 것이다."

■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외교부 산하 싱크탱크인 외교안보연구원(국립외교원의 전신)에서 1991년부터 20여년간 교수로 재임하다 지난해 5월 원장에 취임했다. 핵 문제와 남북관계, 동북아 정세 등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이슈에 두루 정통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조언 그룹인 '국가안보자문단' 위원이기도 하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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