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두 시간여 동안 꼼짝 못하고 스크린에 시각과 청각을 붙들린 채 이해와 감동과 설복을 강요 받는 듯한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경험자들에 의하면 4D 영화관에 가면 가히 꼼짝없이 오감을 붙들린다고 한다. 작가로서의 공연한 고집인지 혹은 속 좁은 악취미인지 모르지만 나의 경우, 다른 이의 창작물에 몰입 당하는 상황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된다. 내가 영화뿐 아니라 공연이나 콘서트, 연극 같은 걸 쉽게 즐기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최근에 지인의 권유로 극장에서 영화 두 편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나는 영화를 보면서 전에는 느끼지 못한, 소박한 감동과 재미를 느끼고는 그동안의 내 옹졸한 아집이 얼마나 어리석었던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내가 본 영화는 열아홉 살 여자 아이가 성적인 모험과 일탈을 통해 성장통을 겪고는 어른이 되는 이야기와, 한 아버지가 자신이 사랑으로 키워온 아이가 병원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로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이야기였는데, 관객에게 어떤 몰입을 윽박지르지도 않으면서 차분하게, 생각할 여지도 주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 영화들은 나처럼 다른 창작물에 영향 받는 걸 극도로 꺼리는 어설픈 소설가를 염두에 둔 것인지, 고맙게도 나직하게 문학적 질문과 아이디어까지 던져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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