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김민정(38) 시인의 '첫' 산문집이다. 언제나 그의 산문을 어디선가 봐왔던 것 같은데 '첫'이라니. 등단 후 여러 매체에 연재했던 글이 원고지 2,000매 남짓 되고, 그 중 "반타작을 내어" 묶은 게 그가 14년 만에 처음 내는 이 산문집이다. 그의 화끈하고 쿨한 성격의 '결정적 증거'다.
출판이나 문학 쪽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얼마나 워커홀릭인지, 얼마나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속도전의 전사인지 들어본 바가 있을 것이다. 그는 그 바쁜 일상 속에서 스쳐가는 '순간순간들의 등짝에다 찍찍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때로는 뭉클하고 짠한, 대개는 솔직ㆍ발랄하고 유쾌한 산문들을 써왔다.
책은 총 5부로 이뤄져 있는데 이 중 1부 '말이란 말이다'와 2부 '용건만 간단히'에 시사와 일상을 가로지르는 짧은 칼럼들이 모여있다. 특히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2부는 한국일보에 연재한 '길 위의 이야기' 중 알토란 같은 글들만 추려 묶은 것이다. "정말이지 길 위에서 지금은 박살나고 없는 내 휴대전화 블랙베리로 매일같이 680자를 꾹꾹 눌러썼던" "원고 매수를 계산하려고 140자 트위터 화면에 한자 한 자 채운 뒤 그걸 복사해 문화부 담당기자의 메시지로 쏴댔던" 추억이 아롱아롱 맺힌 글들이다. 3부 '시다, 수다'와 4부 '시적인 순간들'에는 시론을 비롯해 시와 삶이 교호하는 일상의 순간들을 담았고 5부 '그 사랑, 그 사람'에는 사랑에 관한 단상들이 묶였다.
곳곳에서 폭죽처럼 터지는 그의 유머는 아마도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지. 곤란한 상황이면 대뜸 "내가 누구인지 알아?"라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에게 날리는 그의 통쾌한 일갈에 그만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나는 '어쩌라고요!'라는 유행어가 왜 지금껏 우리에게 큰 웃음을 주는지 잘 알 것만 같았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소설 또한 왜 베스트셀러였는지도 말이다. 그렇다. 주제 파악은 이렇게나 어려운 것이다."('네가 누구인지는 네가 잘 아실 문제')
제목 '각설하고,'는 "내가 내 무릎을 찍게 될 때마다 그 구부러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빈번히도 불러다 앉힌 말"이라고 한다. "내가 자주 쓰는 말이라 함은 결국 내게 자주 필요한 말이라는 뜻도 될 것이다. 터닝 포인트, 인생 팔십이라 친다면 나는 이제 구십 도로 구겨질 일만 남았다. 절반 가량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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