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기 전에 진지(眞智)하게땅뺏기를 하며 꿈을 꾸어본 적이 있다
광겁(曠劫)에 걸쳐 고인 온갖 냄새가 압도하는 골목에서어느 선택된 하루가 빠져버렸어도비바람 속에서도 줄기를 곧게 세우고따뜻한 꽃잎을 피울 수 있었다
무엇을 하였든, 누구일지라도, 아직 살아있다면흠흠한 시대에 어쩌면 상실해버릴지도 모르는바람소리를 말할 수 없어 눈을 감는다
해야하고, 내린 결정이, 영원히 몫으로 남아도누에고치 안에서의 삶처럼청춘이 끝난 후에 깨달은 멍청한 피에로의 시기였다
그때 구하였던 글자가 큰지 작은지 끊어지는 밧줄에 달콤한 꿀 한 방울처럼 이것은 저것은 왜 이 모양이야어딜 그리 바쁘게 갔었는지시위를 당긴 팔다리를 온몸과 직각으로 교차하며제법 기나긴 명상를 끝낸 화살은호수의 새들을 향해 힘차게 날아갔지만과녁은 일찰나(一刹那)도 마음문을 열지 않았다
벌터질로 벗어난 화살이 말했다그것은 최고의 과녁도 아니었고내가 만든 것도 내 것도 아니다라고
그저 빙판에 꽂힌 칼날 같은 기억 한 조각을 정신없이 핥다가 세이런의 치명적인 노랫소리만 들었다"몰랐나요? 화살과 과녁이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
시인은 우리가 사는 이 땅이 때론 하루도 편안한 날 없는 시끄러운 곳으로 정의한다.
남북은 물론 동서의 대립, 여야 각계각층이 이분법으로 재단돼 자기주장만 고집하는 불통사회가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그 화살(공격적 언행)이 누워서 침 뱉기 식으로 모두 자기에게 되돌아오고 있다고 개탄했다. 좀 더 상대방을 배려하고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할 줄 알자고 외치고 있다. 논쟁의 사회보다 논의의 상호의견을 서로 절장보단하여 상생의 자세로 살자고 주장한다. 땅도 막혀있지만 마음도 막혀 가슴마다 벽으로 안고 산다면 대결과 증오의 늪에서 자멸할 것이라고 말한다. 흔해빠진 상투적 교훈보다 심사숙고한 사색의 결과로써 반성적 참신성이 돋보이는 신년시이다.
성군경(56ㆍ필명 백천) 시인은 대구 출생으로, 치과의사이면서 1989년 '흔들리지 않는 건들바위 관사촌(남북문화사刊)'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시작활동을 펴고 있다. 한국시민문학협회 회장(2006~)과 낙동강문학, 시민문학 대표도 맡고 있다. 대구 앞산 고산골 등산로 시화배너(07)와 전북 무주구천동 등산로 시화배너(08)작업을 했고 중국 옌벤 인민공원 시화전(08, 10), 하얼빈 안중근 추모 시화전(09)도 열었다. 2011년 낙동강문학상을 수상했고, 영남일보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를 지냈고 대구신문 시해설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시집으로 영천댐 옆 삼귀리 정류장(07 실천문학사刊) 등 5권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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