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바꾼 지명을 주민들이 100년 만에 되찾았다.
강원 강릉시는 왕산면(旺山面)의 표기를 '왕산면(王山面)'으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한 '한자(漢字) 명칭 변경에 관한 조례'를 8일부터 시행한다고 2일 밝혔다.
강원도의 항토사료를 찾아보면, 왕산면 지명의 유래는 14세기 고려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32대 임금인 우왕(1365~1389)이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 이후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1335~1408) 등 신진세력에 의해 대기리와 왕산리 사이 해발 840m 대관령 산기슭에 유배됐다.
주민들은 이곳을 왕이 머물던 곳이라 해 '제왕산(帝王山)'이라 불렀고, 이후 마을 이름이 왕산(王山)이 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하지만 일제는 1914년 조선총독부령으로 임금왕(王)에 일왕을 상징하는 '日'자가 있는 '왕산(旺山)'으로 지명을 일방적으로 바꿔버렸다. 민족정기를 말살하고 제국주의 사상을 침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일제는 같은 맥락으로 강릉 연곡면 '신왕리(新王里)' 지명도 일왕을 상징하는 단어를 사용한 '新旺里'로, '앞목항'은 일본인들이 발음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안목항'으로 개악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왕산면 주민들은 광복 이후 광복회와 함께 본래 한자표기를 되찾는 등 일제 잔재 청산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지난 2007년 6월 행정구역 명칭정비를 강릉시에 요구한 데 이어, 최근에는 마을 이장들이 중심이 돼 전체 주민 1,703명 가운데 60%에 가까운 1,000여명이 옛 지명 찾기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김준태(58) 왕산면 이장협의회장은 "100년 만에 제 이름을 찾게 돼 이제야 조상님을 뵐 면목이 서게 됐다"며 "주민들과 합심해 일군 성과라서 더욱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강릉시는 "이번 왕산면의 사례는 일제 잔재 청산의 의미는 물론 주민의 자긍심과 애향심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연곡면 신왕리 등도 예전 지명을 찾기 위해 주민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은성기자 esp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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