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출간을 기다리는 저자의 심정은 약속시간에 늦으면서도 연락조차 없는 짝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는 심정을 넘어 아이의 출산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에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억지로 쥐어짜다시피 쓴 책도 있고 따뜻한 봄날의 즐거운 산책과도 같은 기분으로 쓴 책도 있지만 자기가 쓴 책에 대한 애정이야 우열은 없다. '열 손가락 물어도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을 이럴 때 쓰고 싶다.
몇 주 전의 일이다. 출간이 결국 이번 주를 넘기나 보다, 아니 주말에 나올 수도 있지 등등의 생각에 설레고 있었는데 드디어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사무적 대화의 마지막에 "요즘 책이 워낙 안 팔려서 800부만 찍습니다"라는 통보를 듣자, 문자 그대로 멘붕이 왔다. 10년 전 첫 책을 낼 때만 해도 초판이 3,000부 였다고 했더니, '웬 구석기시대 얘기'를 하느냐는 반응이었다. "소설가 M씨의 책은 5년 전에 2만 부가 나갔지만 지금은 2,000부 나간다니까요"라는 말에 할 말을 잊었다. 인기 작가 M의 수요가 5년 만에 10분의 1로 줄었다는데 나 같은 인문학쟁이야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궁금했다. 독자 수가 몇 년 만에 반 토막 정도가 아니라 반 토막의 반 토막도 못되게 줄어든 이유를 말이다. 골똘히 생각할 것도 없이 스마트폰이 가장 먼저 범인으로 떠올랐다. 스마트폰의 급속한 보급에 따라 지하철 안에서 책은커녕 신문을 보는 이도 보기 힘들고 심지어 무가지와 지하철 광고도 거의 없어지지 않았는가 말이다.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우리의 책을 읽지 않는 풍토와 그 원흉인 스마트폰을 성토했더니 신문기자가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말했다. 휴대전화는 눈에 보이는 현상일 뿐 근본원인은 집값, 전세비용이 워낙 올라 주요 문화소비층인 20~30대가 문화에 돈을 쓸 수 없기 때문이란다. 젊은 친구들이 경제적으로 쪼들리기에 가장 저렴하고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애용하는 것뿐이지 그게 책을 안 읽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었다. 명쾌한 논리에 충분히 수긍하였다. 독서시장이 이 지경이 된 책임을 부동산 정책 입안자에게 물어야 한다고 그날 밤늦게까지 열변을 토한 기억이 숙취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다. 얼마 뒤 상갓집에서 대학, 저술, 출판 등에 종사하는 분들이 모인 곳에 끼어 앉게 되었다. 관심이 오로지 책을 읽지 않는 원인에 쏠려 있기에 마침 잘됐다 하는 생각에 여쭈었더니 원로 교수께서 대답해 주셨다. "예전에는 대학에 가기 힘들어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사실 문화의 주요 소비자였다. 지적, 문화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곳이 책밖에 없어 이들이 독서에 몰두하였고 그에 따라 교양서가 팔리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대학 정원이 늘다 보니 너도나도 대학에 가게 되었는데, 대학생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지 않느냐는 반문으로 끝맺음을 하셨다.
책을 읽지 않는 이유를 찾아 생각하고 탐문했더니 스마트폰, 부동산 정책의 실패, 대학입시 정책과 대학생들의 성향까지 돌고 돌아왔다. 모두 일리가 있지만 전폭적으로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도 있다. 한편으로는 독자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인문학 전공자들이 대중과 호흡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시도하지 않은 것이 보다 현실적인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니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거대한 현실의 실체가 보이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요즘 젊은이들이 책과 인문학에 관심이 없고 민주, 정의 등 거대담론에 반응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생존의 무게 때문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 곧 생활할 수 있는 일정한 재산 또는 직업이 없으면 변하지 아니하는 바르고 떳떳한 마음가짐을 유지할 수 없다는 맹자의 말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요즈음이다. 상상력의 원천이자 미래에의 고귀한 투자인 책과 인문학에의 관심이 줄어든 직접적 원인이야말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지 못한 우리 기성세대에게 있다는 생각에 추운 날씨가 더욱 을씨년스러워진다.
김상엽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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