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임신을 계획하는 여성이라면 역아(逆兒) 문제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면 어떨까. 출산 때 정상적으로 머리부터 나오려면 임신 말기에 태아 머리가 질 쪽으로 향해야 하는데, 역아는 반대로 자리잡은 경우다. 국내 신생아의 4~5%가 출산 직전 역아 상태다. 적지 않다.
이럴 때 많은 산부인과가 제왕절개를 권한다. 하지만 의학 교과서나 외국 학회 진료 지침에는 분만 전 미리 태아를 제자리로 되돌릴 수 있는 시술법이 분명히 명시돼 있다. 굳이 제왕절개부터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다. 이른바 자연주의 분만이 대세인데 유독 역아에 대해선 제왕절개를 공식처럼 여기는 건 아이러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과서나 진료 지침에 명시된 시술법은 역아회전술(둔위교정술)이다. 임신 36~37주인데도 태아가 역아 상태인 경우 의사가 산모의 배 곳곳을 손으로 살살 누르면서 자궁 안에서 태아가 자세를 바꾸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마취도, 별도의 기구도 없이 초음파로 태아의 위치를 보고 심장박동 등을 확인하면서 진행한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에선 학회나 정부가 산모에게 안내문을 배포하기도 하고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 사이트에 실제 시술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올려놓기도 한다. 그만큼 일반화한 시술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국내에선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심지어 “옛날에나 하던 위험한 방법”이라며 손사래를 치는 의사도 있다. 의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역아회전술을 시도하다 태아가 잘못되는 경우가 간혹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한정열 관동의대 제일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그러나 “요즘은 초음파 등 관련 기술이 발달해 경험 많은 의사에게 시술 받으면 사고 우려는 극히 낮다”고 말했다. 단 제왕절개 경험이 있거나 양수가 너무 적거나 태반, 자궁, 질 등에 문제가 있는 산모는 전문의와 상담해 신중히 고려하는 게 좋다.
국내외 데이터에 따르면 첫 임신인 산모는 역아회전술 성공률이 60% 안팎, 출산 경험이 있는 산모는 70~90%에 이른다. 태아가 거꾸로 돌아 자연분만이 가능한 상태로 자리잡는 경우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김정환 미래드림여성병원 원장은 “역아 산모들의 상당수가 자연분만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검증된 방법”이라며 “만약 역아회전술을 시도했는데 태아 위치가 변하지 않는다면 그때 제왕절개를 고려해도 늦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많은 산부인과가 역아 산모에게 처음부터 제왕절개를 권하는 건 경제적 이유에서일 거라는 견해가 적지 않다. 제왕절개 산모는 자연분만보다 입원 기간이 길어 병원에 내는 돈이 3, 4배 더 많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자연주의를 내세우며 산모에게 호화 시설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싼 진료비를 받는 병원들이 정작 자연분만율을 높일 수 있는 기본적인 시술을 외면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역아가 스스로 돌도록 만든다며 산모에게 집에서 ‘고양이 자세’를 하라고 일러주는 병원이나 조산원도 있다. 무릎을 굽혀 바닥에 댄 채 엉덩이를 뒤로 빼고 두 팔로 바닥을 짚는 자세다. 하지만 영국산부인과학회 진료 지침은 “자세 조절이 자발적인 역아 회전에 도움 된다는 근거는 불충분하다”고 밝히고 있다. 한 교수는 “양수가 많으면 간혹 회전하기도 하지만 의학적으로 검증된 방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자세를 너무 자주 하면 배 근육이 단단해져 역아회전술이 오히려 어려워지거나 산모에게 두통이 생기기도 한다.
영국 의학계에는 역아회전술 시도 후 합병증이 나타나거나 응급 제왕절개 상황이 생길 확률이 0.5%로 보고돼 있다. 김 원장은 “영국산부인과학회는 전체 임신의 15%에서 응급 제왕절개가 이뤄진다고 본다”며 “역아회전술에 따르는 추가 위험은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중앙대병원과 제일병원, 미래드림여성병원 등 몇몇 병원이 역아회전술을 하고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