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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긴 지명 짧은 지명

입력
2014.01.02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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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이나 뜻이 이상해서 웃음거리가 되는 지명도 많지만 너무 짧거나 길어서 화제가 되는 지명도 많다. 먼저 가장 짧은 지명을 따져보자. 가장 짧은 곳은 당연히 한 글자로 된 곳이다. 물론 우리말 발음 기준이다. 오스트리아의 빈(Wien)이 그런 곳이다. 영어로는 비엔나라고 하지만 현지 이름은 빈이다. 2003년에 대지진이 발생한 터키 남동부 케르만주의 고대 유적도시 밤(Bam)이라는 곳도 있다.

한글로 한 글자에 불과한 지명은 글로 쓸 때 불편한 경우가 더러 생긴다. '빈 거리'도 이상하고 '빈의 거리'도 이상하다. '서울이...'라고 할 때와 '밤이...'라고 할 때를 비교해보라. 그래서 밤시라고 쓰곤 하는데 이름이 밤시인지 밤이라는 시인지 헷갈린다. '밤의 밤[夜]'이라고 하면 더 우습다.

우리나라에서 이름이 가장 짧은 곳은 ??이라는 마을이다. ??마을은 강원 정선군 임계면 도전리에 있는 오지다. 이 일대에 조그만 밭, 즉 뙈기밭이 많아서 뙈밭이라고 하다가 이를 더 줄여 ??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도전리는 한자로 道田里라고 쓴다. 말 줄이는 건 제주사람들도 선수 아닌가? 제주도에도 분명 한 글자로 된 지명이 있을 법한데 잘 모르겠다. ^반대로 한국에서 가장 긴 지명은 강원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의 '안돌이지돌이다래미한숨바우'다. 바위가 많아서 두 팔을 벌려 바위를 안고 돌고 등지고 돌고, 다람쥐도 한숨을 쉬며 넘어가는 곳이라는 뜻이다. 숙암리는 한자로 宿岩里, 자고 가는 바위다.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 가는'이라는 유행가 가사가 생각난다.

이 '안돌이지돌이다래미한숨바우'는 정선아리랑연구소가 선정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지명'이다. 이곳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대전 유성구 학하동의 '도야지둥그러죽은골'이 가장 긴 지명으로 '군림'했었다. 들으면 금세 짐작할 수 있겠지만, 골짜기가 너무 험해서 돼지가 굴러 죽은 곳이라는 뜻이다. '둥그러'는 '뒹굴어'가 변형된 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긴 이름은 약과다. 외국의 긴 지명과 견주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라고나 할까.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세계의 긴 지명 다섯 가지를 살펴보자. 먼저 제 5위. 오스트레일리아 남부 중앙지대의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주(South Australia)에 있는 언덕 이름은 알파벳 26자로 돼 있다. 마뭉쿠쿰푸랑쿤추냐, 이렇게 발음되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하여간 알파벳으로는 Mamungkukumpurangkuntjunya다. '악마가 오줌을 눈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다음 제 4위는 알파벳 31자인 캐나다 마니토바주의 Pekwachnamaykoskwaskwaypin- wanik라는 호수다. '무지개송어가 낚시로 잡히는 곳'이라는데, 이것도 발음을 잘 모르겠다. 제 3위는 알파벳 45자로 된 미국 매사추세츠주 웹스터시의 호수 Chargoggagoggman- chauggagoggchaubunagungamaugg다. 역시 발음이 어려운데, 대충 '차고 까고 그만 차 아우 까고 끝이야'라고 부르면 된다고 주장한 한국인이 있다(한국인들은 역시 머리가 좋아!). 이름이 너무 길어 주 의회가 줄이려 했지만 주민들이 반발해 백지화된 적이 있다. 사실은 주민들도 다 외우지 못해서 웹스터 호수, 처바너강거모그 호수라고 부른다고 한다.

제 2위는 영국 웨일스 앵글시(Anglesey) 섬에 있는 '흘란바이르푸흘귄기흘고게러훠른드로부흘흘란더실리오고고고흐'라는 작은 마을이다. 알파벳 58자. Llanfairpwllgwyngyllgogery-

chwyrndrobwllllantysiliogogogoch. '붉은 굴의 성 티실리오 교회와 물살이 빠른 소용돌이 가까이 있는 흰색 개암나무의 분지의 성 마리아교회'라는 뜻이라고 한다.

대망의 제 1위는 뉴질랜드 북섬 호크스베이 지역 포랑아하우에 있는 언덕(305m)인데 알파벳 85자다. 한글로 표기하면 '타우마타와카탕이항아코아우아우오타마테아투리푸카카피키마웅아호로누쿠포카이웨누아키타나타후'다. 뉴질랜드 지명 데이터베이스에는 Taumatawhaka- tangihangakoauauotamateapokaiwhenuakitanatahu라고 돼 있다. 너무 길어 '타우마타'로 불린다는데, 공식 명칭 외에도 알파벳 92자인 것과 105자인 것 두 가지 별칭이 또 있다.

105자로 된 이름은 '먼 곳에서 이곳으로 바람에 불려(blown) 온 타마테아라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플룻을 연주해준 언덕으로, 그는 포경수술을 받았고, 산을 오르다가 무릎이 까졌으며, 땅에 넘어졌고, 그 땅을 일주하였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85자만으로도 기네스북에 공식 1등으로 등재됐는데, 뉴질랜드 정부가 인위적으로 알파벳을 더 늘려 가까스로 지명을 외운 지역주민들이 반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실은 이것보다 더 긴 이름이 있다니 기가 찰 일이다. 태국 방콕의 원래 지명은 ''끄룽텝 마하나콘 아몬 랏따나꼬신 마힌따라 아유타야 마하딜록 뽑놉빠랏 랏차타니 부리롬 우돔랏차니우엣 마하싸탄 아몬삐만 아와딴싸티 싸카타띠띠야 위쓰누깜쁘라씻'이라고 한다. 알파벳으로 표기를 할 경우 162자나 되는 이 길고 거▤?이름은 차끄리왕조를 연 라마 1세(1737~1809)가 지었다.

'위대한 천사의 도시, 에머럴드 불상이 있는 곳, 침범할 수 없는 땅, 아홉 개의 고귀한 보석이 있는 세계의 웅대한 수도, 신이 사는 곳을 닮은 왕궁이 많은 즐거운 도시, 인드라 신의 도시'. 좋은 말은 다 들어 있는데 후대에 방콕으로 줄어들어 버렸고, 지금은 원래의 긴 이름을 외우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하여간 너무 길면 저절로 줄어들게 마련이다. 아까 뉴질랜드의 그 '타우마타' 언덕에서 포경수술을 받은 사람이 땅에 넘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 상황을 일곱 자로 줄여서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말이나 이름이 너무 길면 줄이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어느 송년회의 여흥시간에 비슷한 수수께끼가 나왔는데, '○○○ 자빠졌네'라고 외친 사람이 상품을 받았다고 한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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