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해를 넘겨 처리한 2014년도 예산안은 부실심사의 전형이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지난해만큼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쪽지 예산' 논란도 여전하다.
여야가 1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새해예산안(355조 8,000억원)은 정부안보다 1조9,000억원을 줄여 외견상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감안한 듯한 모양새다.
그러나 세출ㆍ기금지출 규모의 조정 내역을 보면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선심성 예산이자 누더기 예산에 가깝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여야는 일반ㆍ지방행정 예산과 예비비에서 각각 1조4,000억원, 1조8,000억원을 감액하면서 상당액을 교통ㆍ물류ㆍ지역개발(4,300억원), 사회복지(4,500억원), 농림수산(1,600억원) 분야를 늘리는 데 사용했다. 실제로 전국 각지의 도로ㆍ철도망 구축 및 하천 정비사업 예산은 정부안보다 대부분 증액됐다.
예산안 심사 과정도 여느 해보다 부실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 등 정치현안을 둘러싼 여야 갈등으로 예산결산특위 내 예산조정소위는 대선이 치러진 지난해보다도 무려 17일이나 늦은 12월 10일에서야 가동됐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서 불요불급한 예산을 걸러내는 감액심사는 명목상 13일간 진행됐지만, 국정원개혁특위 운영 등으로 국회가 파행을 거듭하는 동안 나흘이나 공전됐다.
특히 사업의 타당성과 사회ㆍ경제적 파급효과 등을 감안해야 할 증액심사는 불과 일주일만에 마무리됐다. 15명의 소위 위원들이 처리한 증액건수는 무려 2,000여건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대로 된 토론조차 불가능했을 거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소위 소속 한 새누리당 의원은 "감액심사도 그랬지만 증액심사 과정에선 전체 규모의 상한선을 정해놓고 이렇게 저렇게 숫자를 맞추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여야 모두 예산안을 다른 쟁점법안과 연계하는 작태도 반복했다. 민주당은 예산안 심의가 본격화한 뒤 사실상 국정원 개혁안과 예산안 처리를 연계하는 전략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여당인 새누리당조차 연말 시한을 이틀 앞두고 갑작스레 외국인투자촉진법(외촉법)을 고리로 여야 합의가 이뤄진 세법 개정안 일부의 처리를 미뤘다.
'쪽지예산' 논란도 여전했다. 민주당은 최경환 원내대표 등 여당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이 편법 증액됐다며 본회의를 공전시켰다. 여야가 교문위에서 학교비정규직 지원액으로 450억원을 합의했는데, 이 중 250억원이 대구지하철 1호선 연장사업 등 여당 실세 의원들 몫으로 배정됐다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증액심사 막바지에 여당 실세가 쪽지를 넣었다는 얘기가 나와 회의가 중단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신규사업이 아닌 계속사업에 대한 증액, 사업타당성 단계 예산 배정 등의 이유를 들어 정치공세이자 무책임한 폭로라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 여야는 상대방이 정치적 거래를 제안했다는 식의 비난전도 이어가는 등 추태를 거듭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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