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외람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사물이나 현상을 묘사할 수 있는 단어는 오로지 하나뿐이라는 플로베르적 입장에서 본다면, 이 무례한 용어를 피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 한국의 문학판에서 그에게 쏟아지는 열광과 지지와 환호를 묘사할 수 있는 단어는 오직 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이돌’.
이 무례의 언어를 옹호할 수 있는 논거의 항목은 수다하지만, 가장 강력한 것 두 가지만 제시하자. 하나, 그가 지난 여름 펴낸 산문집 (문학동네 발행)가 현재 1만5,000부, 10쇄까지 나왔다. 이 책은 여러 일간지의 ‘올해의 책 10’에도 이름을 올렸다. 둘, 그는 지난 연말 여진구 추신수 이정재 엑소(EXO) 조용필 등과 함께 남성 패션잡지 GQ가 선정하는 ‘Men of The Year(올해의 남성)’에 뽑혔다. 근사한 슈트 차림으로 인터뷰를 하고 화보 촬영까지, 피할 도리가 없었다. 그의 산문집 1만5,000부는 엑소의 앨범 판매량 100만장과 정확히 동급이므로, ‘황현산=엑소’, 그러니 당연히 ‘아이돌’이라는 한 치의 논리적 결함 없는 등식이 성립한다.
“아이돌이 되려면 젊어서 돼야지 나이가 이렇게 들어서는…”(웃음) 젊은 문인들이 기꺼이 ‘우리 시대의 선생’으로 호명하며 ‘애정하는’ 문학평론가, 균형 잡힌 사고와 지적이고 세련된 취향의 아이콘, 황현산(69)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다.
그가 신년부터 한국일보에 새 문화기획 연재를 시작한다. ‘황현산의 우물에서 하늘 보기’라는 제목으로 격주, 한 개 면을 펼쳐 문학과 세상사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넓고 깊은 글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좌정관천(坐井觀天)을 우리말로 풀어 쓴 제목은 본디 견문이 좁음을 일컫는 부정적 의미지만, 여기서는 평생 공부만 한 책상물림으로 스스로를 낮추는 그의 겸손의 소산일 뿐이다.
“시에 관해서 그동안 엄격하게 얘기하고 딱딱하게 분석하는 일을 해왔는데, 이번에는 시를 즐기면서 시가 우리 삶, 구체적 인격들과 어떻게 관계가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제 독자들이 주로 문학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번에는 더 넓은 층의 독자들이 읽을 만한 글을 써볼 참이에요.”
2주에 한번씩 원고지 20매 분량의 글을 쓰는 일은 현재 가장 많은 시인과 출판사로부터 시집 해설 청탁을 받는 ‘비평계의 아이돌’로선 큰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최소 2년은 계속하기로 ‘구두계약’(주최측 일방통보!)까지 해둔 터다. “한 주는 한국일보 연재에, 다른 한 주는 나머지 글 쓰기에 꼬박 쏟아 부어야 하니 앞으로 장거리여행은 못 가게 생겼다”면서도 그는 “귀한 지면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전세계에서 시를 가장 잘 쓰는 나라’에서 시집이 가장 안 팔리는 역설과 모순을 타파해보려는, 성난 얼굴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사회의 구성원들을 문학 독자들로 꼬드기려는 ‘소명’을 자임하고 나선 것 같은 눈치다.
‘스타일(문체)이 곧 그 사람’이라는 명제를 글과 글쓴이 인품의 동일성으로 무구하게 받아들이면 환멸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황현산이라는 이름은 오늘날 그 환멸의 반증으로 젊은 글쟁이들을 사로잡았다. 정신의 노화를 겪지 않는 사람을 보는 경이로움이 그에게는 있다.
“철이 안 들어서 그렇지 뭐….(웃음) 대학에서 정년 퇴임 할 때까지도 저는 학생이란 생각을 버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워낙 엄격한 선생님한테 배워서 그런지, 늘 학생이란 생각을 하게 됐죠. 나이가 들면서 유연성 잃은 사람을 많이 봤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정언적으로 얘기를 하게 되잖습니까. ‘-이다’까지도 괜찮은데 ‘-이리라’까지 가는 거죠. 그렇게 정언적으로 말하게 되면 토론이 불가능해집니다. 공부를 한다는 건 항상 토론이 가능한 상태여야 한다는 건데 말이에요. 이것이 정말 맞는 것인가, 이 생각을 버리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의 문장은 구어든 문어든 언제나 겹문장이다. ‘A는 B다’라고 말하지 않고 ‘A는 B라고 생각한다’의 안긴문장이 그의 기본형이다. 지난주 그가 출연했던 신형철의 문학동네 팟캐스트를 듣던 연극배우 딸이 “ ‘그렇다’ 그렇게 좀 말씀하시지 그랬냐”고 한 마디 했을 정도다. 머쓱한 아버지의 변명.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지 아니면 어떡할라고….”
‘원로’ 소리를 들을 때마다 굉장히 당혹스러운 것은 그 때문이다. “선생 소리를 들으면 현명한 소리를 해야 할 것 같잖아요. 나이 든다고 현명해지는 것도 아닌데. 어떤 경우에나 의견이 현명한 것이지, 현명한 의견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문학 외에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뜻밖에도 “한국사회에서 살았다는 게 큰 재산이 됐다”고 말했다. 1945년 6월에 태어났으니 “농담으로(는) 일제시대를 두 달 간 산 셈”이고, 사실로는 일제를 온통 겪었던 부모로부터 식민지 간접체험을 한 셈이다. 거기다 전쟁이 있었고, 군사독재가 있었고, 민주화운동이 있었다. ‘가난한 공부 잘하는 사람’에게 끊임없는 사유의 계기와 소재들을 한국사회가 마련해준 것이다. “세계의 변방, 거기서도 변두리 낙도(전남 신안군 비금면) 출신 아닙니까. 문학을 통해 보편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절망과 희망, 환멸과 긍지가 뒤엉켰지요. 그게 문학적 자산이 되었고, 문학 덕분에 그런 삶을 잘 버텨올 수 있었습니다. 문학 공부를 한 것이 참 좋았고, 문학에 굉장히 감사해요.”
그의 섬세한 통찰과 아름다운 사유의 문장들은 이 달 10일부터 읽을 수 있다. 첫 회를 앞두고 가장 마음이 분주할 사람은 그이겠지만, 우리에게도 모종의 준비는 필요하다. 마음의 충격과 동요에 기꺼이 자신을 내던질 수 있어야 하므로.
사진설명(어제 화상에)
10일부터 한국일보 새 문화기획 ‘황현산의 우물에서 하늘 보기’를 격주 연재하는 문학평론가 황현산씨. ‘우리 시대의 선생’으로 불리는 그는 ‘임명직 선생’이 아니라 ‘선출직 선생’이다. 그 자격이 “내가 너희의 선생이다”가 아니라 “당신이 우리의 선생이다”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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