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수(19ㆍ가명)군이 공업고등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취업 때문이었다. 일반계 고교를 가는 것보다 졸업 후 취직하기가 더 수월하리라 믿었고 지방에서는 그래도 명성이 괜찮은 특성화고를 택했다. 그러나 졸업을 두 달 앞둔 지금, 이군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어 대학 진학을 준비 중이다. '고졸' 딱지가 준 절망감이 그를 짓누른 탓이다.
현실의 벽을 체감한 건 고3 2학기, 한 회사에 채용되면서였다. 그는 수도권의 한 인력업체를 통해 태양열판을 만드는 중소기업에 파견됐다. 생산기계 작동과 관리를 하면서 받은 월급은 한 달에 150만원 남짓. 하지만 그를 낙담시킨 건 급여 수준이 아니라 회사 선배들을 통해 본 자신의 미래였다. 이군은 "막 취직했으니 큰 월급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10년 이상씩 일한 아저씨들도 월급이 비슷한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넉 달을 고민하다 그는 결국 사표를 냈다. 이군은 "경력이 쌓이면 원청업체에 정규직으로 채용된다는 보장만 있었어도 계속 일했겠지만, 아무리 일해도 평생 파견직밖에 못하겠구나 싶었다"며 "전문대를 나오면 그래도 나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대학에 가기로 작정했다"고 말했다.
특성화고 10명 중 7명 대학 진학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이처럼 특성화고 졸업생 중 취업이 아닌 대학을 택하는 학생은 10명 중 7명에 달한다. 2000년 41.9%였던 대학진학률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2010년 무려 71.1%를 기록했다. 특성화고 졸업자까지 대학으로 눈을 돌리면서 우리나라 고교졸업생의 대학진학률(70.7%)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이런 '과잉 교육'은 우리나라의 인적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오히려 떨어뜨린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기술, 자본, 인적자본의 세가지 요소가 관건인데 우리나라는 그 중에서도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결정하는 인적자본의 비효율이 심하다"며 "대학에 가지 않고 4년 일찍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숫자만 늘어도 잠재성장률이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 불균형(미스매치)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분석 결과, 우리나라는 대학진학률이 OECD 회원국 중 1위지만, 대졸자들이 취업하기에 적합한 일자리인 전문직종의 비중은 OECD 주요국 평균(41.2%)의 절반(22.4%) 수준이다(2008년 기준). 대졸자는 넘쳐나고 그들이 일할 자리는 부족하다.
고학력 과잉→하향취업 악순환
이는 고스란히 하향 취업률로 나타난다. 2010년 대졸자 직업이동경로조사(GOMS)에 따르면, 현 일자리의 업무 내용과 수준이 자신의 교육수준에 비해 낮다고 생각하는 하향 취업률은 24%로 나타났다. 유럽연합(EU) 평균은 우리의 3분의 1인 7%에 불과하다. 채창균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동향분석데이터센터장은 "EU를 기준으로 하면 18%는 굳이 대졸 학력이 필요 없는 자리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으로 '대학 프리미엄'이 과도한 노동시장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채 센터장은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이 과도한 건 학력에 따라 노동시장에서 전망이 다르고, 나아가 결혼과 사회적인 위신까지도 연계돼있기 때문"이라며 "일단 고교만 나와도 충분히 괜찮은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의 구조를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능력 중심의 채용 문화를 세우기 위해 교육부는 현재 직종 별로 업무 수행에 필요한 숙련 과정과 능력의 정도를 표준ㆍ계량화한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개발 중이다. 변양규 실장은 "학교에서는 NCS에 기반한 직업교육을 하고 기업에서도 NSC를 활용해 공정하게 평가한다면 학력 중심이 아닌 능력 중심의 구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직업교육도 개선해야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를 기르도록 고교 직업교육의 시스템을 개선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유럽식 교육모델에서 대안을 찾기도 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3년 우리나라 전체 고교생 중 통상 인문계로 불리는 일반계가 77.5%로 절대 다수이고 직업계는 22.5%에 불과하다. OECD의 중등교육졸업자 중 직업계(준직업계)가 47%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채창균 센터장은 "EU 내에서도 만 20~34세 청년층의 고용률이 평균 75.6%로 가장 높고, 대졸자와의 격차도 평균 7.6%로 가장 적은 나라들은 고교에서 직업계 재학생의 비율이 40%이상인 '도제식 직업교육형' 국가들"이라며 "우리도 이들 나라의 시스템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이다. 독일은 직업계 고교생이 재학기간 중 반은 학교에서, 반은 기업에서 일하는 현장기반 직업프로그램인 '듀얼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독일에서 12년간 유학과 교수생활을 한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학생에게는 기업현장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고, 기업은 예비사원을 숙련시키는 의미가 있다"며 "노동시장 전체로 보면 신규管쩜?매칭이 잘 이뤄지게 하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제도만을 혁신한다고 우리 노동시장의 비효율 구조가 개선되리라고 보기엔 한계가 있다. 박 연구위원은 "일자리의 미스매치나 과잉 교육의 근본 원인은 대학지상주의 풍조와 임금 차별구조"라며 "노동시장 내의 차별을 해소하고 평등성을 확보하려는 정부와 기업의 노력 없이 제도만 베껴와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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