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시험지를 받아 들고 점수가 오를 줄 알았어요. 예전엔 수업시간에 모르는 게 나오면 그냥 잤어요. 혼자서는 힘들어 포기했죠. 하지만 이제는 손들고 질문하기 민망한 것도 멘토인 지호와 짝이 되면서 그때그때 물어볼 수 있어요.”
‘수포자(수학포기자)’였던 서울 창천중 2학년 영은이는 수학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며 웃었다. 2학기 중간고사에서 수학 점수를 20점이나 끌어올렸다. 수학뿐 아니라 전과목에서 골고루 성적이 올라 평균 16.4점이 올랐다. 멘토가 되어준 같은 반 지호와 짝이 돼 함께 공부한 결과다. 둘은 아침자습시간, 쉬는 시간, 점심시간, 방과 후, 주말을 틈틈이 쪼개 같이 공부했다. 영은이는 “시험기간에는 주말에 분량을 정해놓고 4~5시간씩 지호와 공부했다”며 “옆에서 지켜보는 멘토가 있다보니 혼자 할 때처럼 핸드폰만 만지거나 딴짓하지 않고 집중이 됐다”고 말했다.
창천중이 같은 반 학생을 일대일로 짝 지어 공부를 돕는 ‘또래멘토링제’를 운영하면서 교실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1학기 3학년에서만 실시했다가 반응이 좋아 2학기부터 1, 2학년으로 확대해 전교생 480명 중 절반이 넘는 260명이 참여했다. 멘토링을 받는 학생들 성적만 오른 것이 아니라 학급에서 공부하는 분위기가 잡히고 교우관계까지 좋아졌다. 2012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기초학력미달학생 비율이 서울 평균보다 높아 서울시교육청에 의해 ‘학력향상형 일반학교’로 지정됐던 창천중은 또래멘토링제의 효과로 2013년 평가 결과 기초학력미달학생 비율이 국어에서 0.3%포인트, 영어 1.6%포인트 줄어들었다.
또래멘토링제는 같은 또래가 가장 좋은 선생님이라는 말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영은이는 “멘토가 없었을 땐 안 했던 공부를 이젠 집에 와서도 두 시간씩 하는 습관이 들었다”며 친구로부터 공부하는 습관과 방법을 터득했다고 말한다. 학습효과는 멘티뿐 아니라 멘토에게도 나타난다. 친구의 공부를 돕는 2학년 이아미양은 “처음에는 공부할 시간을 빼앗기는 것 아닌가 망설여졌는데 설명을 잘 하려다 보니 대충 알았던 것도 정확히 공부를 하고 반복해야 해서 저절로 내 성적도 올랐다”며 “한번도 100점을 맞은 적이 없던 수학에서 만점을 받고, 전교 등수도 22등이 올랐다”고 기뻐했다.
이 학교 김영숙 교사는 “수학에서 10~20점 받던 아이들이 친구와 함께 공부하면서 40~50점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건 아는 문제를 풀어서 맞혔다는 얘기”라며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는 것, 관심을 갖고 시도한다는 것이 굉장한 일”이라고 놀라워했다. 김 교사는 “멘토를 하면서 성적이 더 오른 학생도 많고, 공부는 잘하지만 혼자 놀던 애들도 친구가 생기고 관계가 돈독해지는 효과까지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창천중은 올해 학력향상형 일반학교에서 벗어났지만 또래멘토링제는 계속 유지할 계획이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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