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가정(假定)은 무의미하다. 가정은 현실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저가 루비콘강을 건너지 않았다면 세계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고, 대원군이 쇄국 대신 개항을 택했다면 조선의 운명도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가정은 가정일 뿐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가정이 의미 있을 수도 있다. 아무리 복기해도 과거가 달라지지는 않지만, 현실에 임하는 교훈과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저처럼 루비콘강 앞에 섰을 때 건너는 결단을 내릴 수 있고, 대원군처럼 역사의 기로에 섰을 때 과거를 교훈 삼아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가정은 과거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미래에 대비할 수 있다.
한국의 현대사에서도 '이랬다면' '이러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을 붙일만한 대목들이 무수히 많다. '이승만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하지 않았다면', '6ㆍ25 전쟁이 없었다면', '장면 총리가 5ㆍ16 군사쿠데타에 저항했다면',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체제를 출범시키지 않고 물러났다면'등등. 역사의 고비마다 보다 현명한 선택이 이루어졌다면 나라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런 가정을 이른바 민주세력에 국한해 적용해보면, 세 번의 결정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순간이 있었다. 첫째는 1987년 대선이고, 둘째는 1990년 3당 합당이며, 셋째는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이다. 만약 1987년 6월 항쟁으로 쟁취한 직선제 대선에서 민주세력의 두 거물인 김대중, 김영삼 후보가 단일화했거나, 1990년 김영삼 민주당 총재가 노태우 정권의 민정ㆍ민주ㆍ공화 합당 제의에 응하지 않았거나,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 정치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이 세 사건을 관통하는 것은 민주세력의 분열이었다. 1987년 대선만 하더라도 노태우 민정당 후보는 겨우 36.6%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YS 28.0%, DJ 27.0%로, 민주세력 후보가 55%나 얻고도 분열해서 패했던 것이다.
더 큰 사건은 3당 합당이었다. 3당 합당은 YS 입장에서 보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은 쾌거일 수도 있지만, 민주세력 전체를 놓고 보면 과거청산도 없이 구세력에 생존과 확장의 명분을 준 뼈아픈 분열이었다. 그 이후 '민주 대 반(反)민주' 구도가 별도의 역사적 정리도 없이 '진보 대 보수'로 변질됐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후 친노 세력 주도로 이루어진 열린우리당 창당도 민주세력을 또 한 번 쪼갰다. 당시 노 대통령 탄핵에 대한 역풍으로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는 승리를 거뒀지만, 민주세력의 분열은 길고도 깊은 상처로 남아 이후 선거에서 연전연패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후유증으로 민주세력의 적통을 이어가고 있는 민주당은 여전히 헤매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해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당은 패배했고, 국가기관 선거개입을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다는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 지지도가 떨어져도 민주당 지지도는 오를 기미조차 없다.
올해 6월 치러질 지방선거 전망도 현재로서는 민주당에 비관적이다.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안철수 신당에도 밀리는 아주 왜소한 처지다. 선거에서 분열은 필패를 의미하지만, 그렇다고 안철수 신당의 정체성이 모호한 상황에서 도식적 연대만으로 국민 지지를 받기도 힘들다. 현 정부가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이나 코레일 사태에서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밀어붙이는 데는 민주당의 약세가 한몫 하고 있다.
민주당을 필두로 하는 민주세력에는 희망은 없는 것일까. 현재로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안 보일 때는 묘수를 찾지 말고,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는 것이 해답일 수 있다. 정치공학적 연대에 매달리지 말고, 주장하는 바와 추구하는 바를 확실하게 정리해 국민에게 심판 받는 것이다. 그 결과가 참담하더라도, 한 길로 가는 모습이 훗날 크게 얻는 길일 수 있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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