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전세계의 공분을 산 아베 일본 총리가 갑오년 새해 벽두부터 군사대국화를 향해 폭주할 태세다. 아베 총리는 태평양전쟁 격전지였던 남태평양 제도를 2년 동안 여러 차례 나눠 순방한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일본 총리의 남태평양 방문은 1985년 나카소네 총리 이후 29년만이다. 전몰자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 섬나라들이 당시 '남양군도'로 불리며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은 곳이라는 점에서 아베 총리의 의도는 뻔하다. 일본의 해양진출을 도모하고 국내 보수층을 결집하는 한편,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정기적으로 태평양 도서국가와의 정상회의를 열어 각종 경제지원을 해 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에게 남태평양 군도는 일제강점기 당시 수만명이 강제 징용ㆍ징병돼 상당수가 고국 땅을 다시 밟지 못하고 희생된 한과 아픔이 서린 곳이다.
이 뿐이 아니다. 이달 정기국회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개정을 용이하게 하는 국민투표법 개정안을 제출키로 하는 등 법적, 제도적 장치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마지막 날인 31일에는 가미카제 자살특공대를 미화하는 영화를 보는 것으로 한 해를 마무리했다.
아베 총리의 우경화 폭주는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고, 또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문제는 이런 일본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 문제다. 일본을 적극 거들었던 미국은 야스쿠니 참배 이후 여러 차례 "실망했다"는 이례적으로 강한 성명을 냈다. 하지만 바로 뒤 일본의 오키나와 후텐마 미국공군기지 이전 승인으로 "미일관계가 한 단계 격상됐다"는 헤이글 국방장관의 발언이나, "한국, 중국은 일본 우경화 정책의 빌미가 되지 않도록 일본과 만나서 대화해야 한다"는 뉴욕타임스의 사설은 주목 받지 못했다. 일본을 성토하는 것은 좋으나 국제여론의 한 면만을 보거나 이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면 고립을 자초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우리의 입장은 미국과도 다르고 중국과도 다르다. 흥분보다는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120년 전 갑오년의 굴욕이 주는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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