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1,500일 앞으로 다가왔다. 4자리 단위의 숫자가 주는 이미지는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불과 한달 여 남은 상황에서 평창올림픽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실제 소치올림픽 개막 이틀 후 2월9일은 평창올림픽 D-4년이 되는 날이다.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의 발걸음이 빨라질 수 밖에 없다. 김진선(68) 조직위원장의 수첩엔 향후 4년 동안의 올림픽 스케줄이 빽빽하다. 국제 스포츠계에서 ‘올림픽 거버너’(Governorㆍ지사) 혹은 ‘미스터 평창’으로 통하는 김위원장을 지난해 12월 30일 조직위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평창올림픽 마케팅을 위해 철저하게 을(乙)의 입장에서 갑(甲)인 국민과 기업, 지자체를 상대하고 있다”며 “내 머리 속은 온통 올림픽 성공개최와 흑자대회 성사를 위한 고뇌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평창올림픽 조직위를 2년 더 이끌게 됐다. 앞으로의 각오를 밝힌다면.
“횟수로 16년째 평창과 인연을 맺고 있다. 일생일대의 보람이다. 올림픽 개막 때까지 4년여 시간이 남아있지만 여전히 1분1초가 부족한 심정이다. 올림픽 유치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신발끈을 조여 매겠다.”
-2014년에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물리적으로 공기(工期)가 필요한 경기장, 교통 인프라, 선수촌 등을 3월내에 착공하는 것이다. 흑자 올림픽을 위한 마케팅도 본격 궤도에 올려야 하고 문화행사의 틀도 완성시켜야 한다. 그 동안 계획(안)을 세웠다면 올해는 하나씩 실천하는 해가 될 것이다.”
-흑자 올림픽을 위한 복안은.
“흑자ㆍ적자 올림픽에 대한 기준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올림픽은 기업 사업과는 성격이 다르다. 대규모 시설 투자가 불가피한 교통망 확충과 경기장 건설 비용을 올림픽 예산에 묶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실제 원주~강릉 고속철도 건설은 국가 사업으로 2020년까지 완공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이를 평창올림픽을 위해 완공을 2년 앞당겼을 뿐인데 올림픽 소요 예산에 포함시킨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1조7,000억원에 달하는 대회 운영경비는 조직위의 마케팅으로 흑자를 자신한다. 이를 위해선 평창의 밸류(가치)를 높여야 하고, 재계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당대에 한국에서 열리는 마지막 올림픽이란 관점에서 메이저 기업들의 그룹차원 전방위적 올림픽 마케팅을 기대한다.”
-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을 때 늘 스포츠가 앞장서서 해빙무드를 조성해 왔다. 이와 관련해 북측에 메시지를 보낸다면.
“평창올림픽 두 번째 유치전이 한창이던 2006년 평양을 방문했다. 당시 문재덕(69)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겸 조선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평창올림픽 유치’에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러면서 남북단일팀 구성, 문화행사 제휴, 공동 훈련캠프 운영 등에 의견을 일치하고, 합의서를 교환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도 공개했다. 이 같은 합의 정신은 지금도 살아 있다고 본다.”
-평창 올림픽 흥행을 위해 국민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평창올림픽은 우리 국민들이 만들어준 ‘작품’이다. 세 차례의 도전 때마다 90%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는 세계 올림픽 유치사에 유례가 없다. 그런 면에서 국민들이 내린 ‘명령’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공개최도 국민들이 함께 해줄 때에 가능하다. 2012 런던올림픽 때 보여준 영국인들의 헌신이 부러웠다. 2018년이 되면 우리나라도 실질적인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게 된다. 평창올림픽을 통해 선진 대한민국, 선진 국민들의 자세를 세계인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소치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대표팀에 바람이 있다면.
“우리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내야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성공적인 평창올림픽 1차 책무는 선수들에게 달려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피겨의 김연아, 빙상의 이상화 등이 깜짝 금메달을 따내, 이듬해 평창올림픽 유치때 큰 도움을 받았다. 이전까지 서구에서는 한국이 동계스포츠를 하는 국가라는 인식마저 희박했던 게 사실이다.”
-김 위원장에게 평창 올림픽은 어떤 의미인가.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1999년 강원도지사 재임 때 올림픽 유치를 대내외에 천명했다. 처음 구상한 때는 1994년이다. 개최까지 4년이 남았지만 평생의 보람이자, 인생의 한 축이라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운명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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