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아버님, 2030년 새해를 맞아 저는 조금 특별한 편지를 준비했습니다. 이 편지는 2014년, 그러니까 40대 초중반이셨던 과거의 부모님께 띄우는 편지입니다. 왜 하필 2014년이냐구요. 그 이유는 마지막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2002년에 태어난 '월드컵둥이'입니다. 어린 시절 저는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월드컵을 개최하고 무려 4강까지 오른 해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꽤 자랑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 시절 얘기일 뿐입니다. 요즘 제 친구들은 "우린 그냥 저주받은 세대일 뿐이야"라는 말을 달고 사니까요.
어제 신문을 보니 정부가 80대 이상 독거노인의 안락사를 전담하는 '행복장의사'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하더군요. 고령층 자살률이 매년 세계 최고 기록을 경신하자 정치권이 꺼내든 고육책이라고 합니다. '죽고 싶어하는 노인'이 편안하게 죽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지요.
요즘 마트에서는 노인용 요실금 방지 기저귀가 아기 기저귀보다 많이 팔린다는 기사도 있더군요. 네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 고령자라는 통계도 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80대 할머니와 100세가 넘으신 증조할머니를 모시고 아직도 명절마다 시집살이를 하시는 어머니가 누구보다 잘 느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저희 집은 아버지께서 아직 일을 하고 계셔서 걱정이 덜하지만, 제 친구 중에는 노부모 부양할 자신이 없어 이민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60대부터 20년 이상 나라에서 주는 연금만으로 생활하는 분들이 수 십만 명에 이른다고 하네요. 이러니 나라 빚은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저는 두렵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저희 세대가 짊어져야 할 짐이니까요. 경제활동 인구는 갈수록 줄어들고, 나라 빚은 늘어가는데 저희 세대가 과연 이 많은 어르신들을 모두 부양할 수 있을까요.
얼마 전 아버지께서 저에게 "돈도 출세도 관심 없는, 한마디로 꿈이 없는 아들"이라고 질책을 하셨죠. 그런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제가 말과 글을 깨우친 이래 가장 자주 접한 단어는'불황'이었습니다. 저희는 장기불황, 침체경제, 불임경제 같은 말들에 익숙한 세대입니다. 게다가 태어난 순간부터 노인과 부채를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하는 세대입니다.
부모님 세대는 우리들에게 왜 이렇게 무거운 짐을 남겨주셨나요.
2014년의 부모님께 편지를 띄우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당시 한국은 여전히 4% 이상의 잠재성장률을 견지해 온 나라였습니다. 동시에 가파른 고령화와 부동산 거품, 가계부채 등 저성장에 대한 경고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 시점이었지요. 앞서 장기간의 저성장 시대를 경험한 일본이라는 '반면교사'도 있었습니다.
아마 그때가 저희 세대의 불행을 예견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릅니다. 꿈과 목표라는 것도 성장이 유지되는 시대에나 가능한 것 아닐까요. 부모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2014년 그 해 부모님은 이 못난 아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셨나요.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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