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갑오년은 청마의 해다. 힘과 속도를 상징하는 말 중에서도 푸른 말은 가장 진취적이고 활달하다. 특유의 질주 본능과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인해 말은 인간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가축으로 꼽힌다. 전쟁 때는 군마로, 급한 연락을 주고 받을 때는 역마로 변신했고 춥고 배고플 때는 고기와 가죽을 제공했다.
소나 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우아한 모양새 덕인지 말은 신의 매개체로 여겨지기도 했다. 박혁거세 신화에서는 하늘이 내린 지도자의 출현을 알리는 역할을 맡았다. 각종 장례 유물에서는 망자의 영혼을 등에 태우고 저승으로 인도하는 모습도 보인다. 다양한 대체재가 개발된 지금은 택시 미터기 안에서만 뛰는 형편이지만 가끔 시골 벌판에서 마주하는 말은 여전히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아름다움과 기품을 뿜어낸다.
말의 해를 맞아 말과 관련된 그림, 유물, 사진, 조각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풍성하다. 롯데갤러리에서 2월 24일까지 열리는 '청마시대'전에서는 몽골, 한국, 호주 작가들의 말 그림과 조각을 볼 수 있다. 세 나라가 말과 맺어온 저마다의 역사가 말 형상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관찰하는 재미가 있다. '몽골인들은 말 위에서 태어나고 말 위에서 죽는다'는 말이 있듯이 몽골에서 말의 의미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각별하다. 서너 살 때부터 승마를 배우며 가까이 해온 말의 이미지가 몽골 정신의 근간을 이루는 텡그리 신앙, 샤머니즘, 불교, 범신론과 합쳐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국에서도 말의 준수한 외모와 자태를 표현한 마도(馬圖)가 널리 사랑 받아 왔다. 조선시대에는 안견, 윤두서가 말 그림에 일가견이 있었으며 김홍도, 장승업의 그림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전시에서는 고 김점선 화백이 그린 웃고 있는 흰말의 판화 작품과 전자기판을 연상시키는 장동문 작가의 말 그림 등이 나왔다.
호주는 세계 2위의 마필 생산국이자 450개의 경마클럽과 330개의 경마장을 보유할 정도로 몽골 못지않게 말 문화가 발달했다. 몽골의 말이 역동적이고 한국의 말이 점잖다면 호주의 말은 서정적인 모습이다. 재호주동포인 박이원 작가가 의인화한 말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새침한 표정으로 서 있어 웃음을 자아낸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2월 17일까지 열리는'힘찬 질주, 말' 특별전에서는 말과 관련된 풍속과 말이 지닌 상징을 60여점의 유물자료를 통해 살핀다. 충북 단양에서 거의 온전한 형태로 출토된 청동기시대의 '말 머리뼈', 삼국시대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말모양 토기', 서울 '마장동'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살곶이 목장지도', 부부 금슬 및 자손 번창을 기원하는 조선 후기의 '곤마도' 등이 나왔다. 재갈, 편자, 등자 같은 말 관련 용품과 1970년대의 말타기 장난감 등도 볼 수 있다.
경기도박물관은 올 한 해 동안 '말 타고 지구 한 바퀴' 전시를 열고 인간의 동반자로서 살아온 말의 일생을 조명한다.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기마 인물형 토기'와 천마총에서 나온 '천마도'의 사진,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에 등장하는 말 그림 등을 통해 다산, 풍요, 액땜 등 말에게 부여된 다양한 상징성을 되돌아본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말 모양 허리띠고리, 마패, 말갖춤(말을 부리는 데 사용되는 도구) 등도 전시된다. 박물관을 찾은 어린이들을 위해 말 그림 위에 말갖춤 모양 스탬프를 찍어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과 말을 소재로 한 동화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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