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회원국 잠재성장률 전망은 정부와 경제학계에 커다란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OECD는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2038년쯤 1%로 추락할 것이며 이 경우 OECD 34개국 중 룩셈부르크(0.6%)를 제외하고 최하위가 된다는 섬뜩한 경고를 내놓았다.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은데 우리나라의 성장 엔진만 완전히 식어버린다는 뜻이다.
미국의 20년 뒤 잠재성장률은 2.1%, 유로존(1.4%)과 일본(1.3%)도 한국보다 높을 것으로 전망됐다. 심지어 재정위기로 디폴트 우려마저 나온 그리스조차 우리나라보다 잠재성장률이 높을 것이라고 OECD는 추정했다. 만약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우리는 선진국 문턱에서 발을 내딛지도 못하고 조로(早老)해 버리고 만다.
고령화와 투자 부진이 원인
'저주'처럼 이 전망의 가장 큰 근거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한국의 고령화였다. 1970, 80년대 우리나라의 성장을 이끌었던 생산요소인 '노동력'이 이제는 성장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돼 버린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이미 생산활동이 활발한 인구(25~55세)는 2009년에 정점을 찍고 줄어들고 있고, 생산가능인구(15~65세)는 2016년을 정점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다 노동시장이 복지조건이 좋은 1차 시장(대기업 정규직)과 매우 열악한 2차 시장(비정규직 등)으로 극단적으로 갈리면서 청년층이 노동시장에 쉽게 진입을 하지 못해 한참 일을 해야 할 청년층이 취업마저 포기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OECD는 여성 경제활동인구를 선진국 수준으로 늘리면 잠재성장률 하락이 크게 늦춰질 수 있다고 권고하지만, 양질의 보육시설이 부족하고 초장시간 노동으로 정시 퇴근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워킹맘의 경력단절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투자 부진도 심각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기 전부터 우리 기업들은 노동비용이 싼 해외에 공장을 짓기 시작했고, 최근 들어 이 같은 경향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스마트폰은 거의 대부분, 현대차의 자동차는 60~70% 정도가 해외에서 생산되고 있다.
수요 측면에서는 수출의 부가가치 창출력이 매우 낮아진 상황에서 민간소비와 내수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수출 위주 성장이 계속되면서 국가적으로 경제규모는 확대됐지만 정작 우리 국민의 소득은 그다지 증가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국가 전체적으로 가계소득 대비 기업소득 비중은 OECD 최고 수준으로 증가했고, 경제규모(GDP) 증가 대비 가계소득 증가는 반대로 최하 수준이다.
근로소득자의 평균 연 급여액은 2,960만원에 불과하고 정규직 근로자 중간 임금의 3분의 2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저임금 근로자' 비율은 26%에 달해 OECD 주요국 중 1위다. 여기에 1,00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가계부채로 원리금 상환 압박까지 받고 있어 민간소비가 부진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경제규모가 커지면 국민들의 소득도 늘어났지만 지금은 그 고리가 끊어진 지 오래기 때문에 소비의 성장기여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경제 패러다임 전환해야
저출산 고령화, 투자 부진, 민간소비 부진 등 잠재성장률을 낮추는 요인은 소소한 정책의 나열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의 개혁이 아니면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잠재성장률 급락의 가장 큰 요인인 저출산 고령화는 쉽게 바뀌기 어려운 문제인데다 마치 잠복기간이 길어 말기에나 증상이 나타나는 병처럼 직접적인 영향이 추후에 나타나기 때문에 당장 획기적인 수준으로 재정 투입과 개혁이 일어나기 어렵다.
기업 투자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 투자해 이익을 볼 수 있다는 경제적 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예전 권위주의 시절처럼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을 불러 모아 "투자하라"고 윽박지른다고 해서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고도성장기처럼 기업들이 투자해야 할 분야를 정부가 정해주고 투자하라고 유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선진국이 이루어놓은 산업에 집중 투자해 따라 가는 과거의 모델은 소용없어졌고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데, 정부나 기업 모두 과연 무엇이 신성장동력인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과거 외환위기를 극복했을 당시처럼 대규모의 경제ㆍ사회적 구조개혁이 시급하다. 하지만 그때보다 개혁을 단행하기란 더 어려워졌다. 과거에 단행된 경제개혁은 우리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한편으론 일자리와 소득의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이에 따라 사회적 대립도 커졌다. 과거처럼 외환위기가 발생하더라도 온 국민이 합심해 장롱 속의 금까지 모아 내놓는 풍경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일본도 고이즈미 개혁이 불러 온 '격차세대'라 불리는 양극화 때문에 사회갈등이 심화됐고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지속적으로 권고해 온 구조개혁을 단행하기 어려워졌다"면서 "새로운 경제개혁을 추진한다면 특정 계층이 아닌 국가 전반의 공동 성장을 가져올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해야 하고, 적극적인 대화화 설득에 나서 국민의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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