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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상처 깊은 다리 건너니 희망이 손에 잡힐 듯…부산 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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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상처 깊은 다리 건너니 희망이 손에 잡힐 듯…부산 영도

입력
2013.12.31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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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영도다리(지금의 영도대교)가 다시 열렸다. 큰 배 지나갈 수 있도록 상판 일부가 하늘 향해 들렸다는 이야기다. 47년만의 일이다. 이런 다리가 도개교다. 한국에서 유일하고, 세계에서 따져 봐도 얼른 떠오르는 것이 영국 런던 템즈강의 타워브릿지 정도다. 다리 하나 들린 것에 호들갑 떨만하다는 뜻이다.

하나 더 추가한다. 이 다리, 보통 다리가 아니다. 전쟁 피난살이의 애환 오롯하게 얽힌 산물이다. 다리가 들리면서 근대의 질곡도 깨어났다. 춥고 배고프던 시절 왜 끄집어 내냐고 물을지 모를 일이다. 새해 맞아 희망 이야기해보자는 거다. 죽고, 못살 것 같은 그날를 버틴 것 생각하며, 요즘의 퍽퍽한 살림살이쯤은 거뜬하게 감당하자는 의미다. 희망과 용기는 이런 거다. 이러니 부산 가면 영도다리 한번 보고 오자. 다리 건너 영도에 가면, 그 유명한 태종대도 있고, 부산 최고의 전망대, 봉래산도 있다. 개항(1876) 이전에는 말방목장이 있었다니, 갑오년 ‘말의 해’ 맞아 찾아가면, 생기 가득한 말의 기운 받을지 모를 일이다. 새해 벽두에 부산 영도 이야기하는 이유다.

●47년만에 번쩍 들린 영도다리

자갈치시장 앞으로 물길 건너 보이는 섬이 영도다. 말이 섬이지, 육지와 연결된 다리 제법 많이 놓였다. 지금의 중구에서 이어지는 영도다리와 부산대교, 서구에서 들어오는 남항대교…. 남구와 연결되는 북항대교의 공사도 막바지다. 그러나 영도다리 건너서 들어갈 때 가장 가슴 떨린다. 107층 높이로 건설 중인 중앙동 롯데타운 앞에서 시작이다.

영도다리 내력이 깊다. 일제강점기였던 1934년에 건설됐다. 한국 땅에 들어선 최초의 연륙교(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이자, 아시아 최초의 도개교다. 당시 사람들에겐 참 신통방통한 다리였을 거다. 그 육중한 다리(전체 214m 중 30m)가 공중으로 불쑥 들리는 데다, 섬을 육지와 다름없이 만들어버렸으니 말이다. 부산의 명물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초행길에도 물어물어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이만한 ‘만남의 장소’도 없었을 거다. 한국전쟁 터지자, 전선이 남쪽으로 속절없이 밀렸다. 팔도의 피난민들 집 떠나며 행여 서로 헤어지면 이 다리에서 보자고 했을 거다. 기다림, 만남, 통곡…. 피난민들의 애통한 사연은 이렇게 다리에 얽히기 시작했다. 다리 아래 판잣집들 우후죽순 생겼다. 지금의 중구 쪽에는 점집도 많았단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살붙이의 생사를 물었단다.

도개는 1966년 9월 들어 멈췄다. 영도에 사람 많아지고, 교통량이 증가하니 도개가 불편했다. 새 항구, 새 항로가 생기자 큰 배가 다리 아래를 지날 일도 없어졌다. 영도에 물 대는 수도관까지 다리 위로 놓이자 도개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했다. 세월 더 흐르고, 교통량 더 늘어나니 더 큰 다리가 필요했다. 오래된 다리는 안전하지 못했다. 논의 끝에 예전과 똑같은 모양의 다리 새로 만들고, 옛날처럼 상판도 들어 올리자는 뜻이 모였다. 롯데그룹이 다리 인근에 롯데타운을 조성하면서 새 다리를 놓고, 이것을 부산시에 기부했다. 지난해 11월 27일 새 다리가 개통됐다. 다리 상판도 다시 들렸다.

이렇게라도 다시 보게 된 다리가 반갑다. 사라질 뻔 했던 기억 한 부분이 오롯이 남게 됐으니 말이다. 왕복 4차선이던 폭이 6차선으로 넓어진 것 빼면, 전과 똑같다고 부산관광공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철거된 옛 다리의 부속시설들은 기념관 세워지면 전시될 예정이다.

도개는 하루 한 차례 정오부터 약 10분간 진행된다. 사람들은 전보다 더 바빠졌다. 그래도 다리 건너다 멈춰 서서 기꺼이 기다린다. 허공으로 열리는 다리도 다리지만, 이 역설적인 풍경도 참 정답다.

다리 건너 영도로 들어간다. 가수 현인의 노래비가 있다. 피난민의 애환 담긴 ‘굳세어라 금순아’를 불러 1950~60년대 큰 인기 얻었던 그다. 영도 출신이다. 노래 내용은 이렇다. 피난 와서 국제시장 장사치로 일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주인공이 영도다리에 걸린 초승달 바라보며 1․4후퇴 때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금순이’를 그리워한다. 노랫말은 애틋한데, 반대로 곡조는 흥겨우니 먹먹하기는 더 하다.

●천연한 풍경 속 오롯한 근대의 향기

다리 건너면 영선동, 남항동이다. 근대의 흔적이 오롯한 동네들이다. 특히 남항동이 꽤 흥미롭다 선박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눈이 놀랄 것들이 많다. 선박 수리나 부속 제작하는 수리 조선소들이 산재해 있다. 도시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다. 수천 톤 규모의 선박이 수리되고, 도색 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거대한 선박부속들이 부러져 있는 것도 참 이색적인 풍경이다. ‘대동맨션’ 1층 상가에는 슈퍼마켓이나 세탁소가 아닌 수리 조선 업체들이 입주해 있다. 의미도 있다. ‘에스엔케이라인’ 자리는 1887년 세워진 한국 최초의 근대식 목조 조선소(다나카 조선소)였던 자리, 한진중공업은 조선중공업이란 이름으로 1937년 한국 최초 철강 조선소로 문을 연 곳. 이 일대 협회에 등록된 수리 조선소는 70여 곳. 등록안 한 곳 합치면 수는 훨씬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관광공사와 영도구는 이런 것들 잘 엮어 산업관광을 테마로 한 ‘100년 넘은 조선소 찾아가는 10리 길(가칭)’을 만들려고 한다. 이미 이 일대 돌아본 몇몇 해외 방송국들이 큰 호기심 보였다. 찾아가려면 영도경찰서 뒤쪽에서 남항방파제까지 골목골목 좇아가면 된다.

남항동 빠져나오면 영선동이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주로 터 잡고 살았던 동네다. 절영해안산책로는 걸어봐야 한다. 남항대교 인근에서 중리해변까지 이어진 약 3km의 산책로인데, 풍경 예쁘기로 소문났다. 바다와 딱 붙어 달리니 걸으면 상쾌하고, 푸른 바다위에 수십 척의 커다란 선박이 정박해 있는 풍경이나 해안 기암들도 볼만하다. 그래서 영화에도 자주 나왔다. 영도구 관계자는 “700리 부산 갈맷길의 본보기가 된 길이다”고 자랑했다. 해안절벽에는 알록달록 벽화 그려진 집들도 아슬아슬 붙어있다. 흰여울문화마을이라는데, 규모는 작아도, 경남 통영의 동피랑 벽화마을 같은 분위기 난다. 젊은 예술가들 작업실도 있고, 사진 좋아하는 이들도 종종 찾는단다.

말 나온 김에 하나 짚고 넘어간다. 영도의 옛 이름이 절영도다. 끊어질 절(絶), 그림자 영(影)을 썼는데, 나중에 ‘절’자가 떨어져 나갔다는 추론이 대세다. 신라 때부터 조선 중기까지 영도에 말 방목장이 있었다. 나라에서 관장할정도로 명마가 많았는데, 하루에 천리를 가는 천리마도 있었다. 이 말이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그림자조차 따라오지 못하고 말과 끊어졌단다. 그래서 절영도다. 영도에서 종종 말 조형물 보게 되는데, 이런 이유다. 산책로가 끝나는 중리마을에는 해녀들이 많다.

●영도 최고의 비경…태종대

영도 해안의 끄트머리가 바로 부산 제일의 경승지 태종대다. 여기 안 보면, 영도 안본 거다. 일망무제의 바다와 등등한 기세의 기암이 어우러지니 입이 절로 쩍 벌어진다. 해송은 늘 푸르고 싱싱하니 언제 찾아도 가슴 탁 트이고 정신 맑아진다. 영도등대 일대가 백미다. 왜구에 끌려간 남편 기다리다 돌이 된 여인의 망부석, 신선과 선녀들이 그토록 게으름 부리며 놀았다던 신선바위가 여기에 있다. 흰 파도 부서지는, 깎아지른 절벽 위에 떡하고 서면, 하늘과 바다 사이 한없이 넓고 큰 기운 실감한다. 이 호연지기에 반해 신라 태종 무열왕이 이곳을 즐겨 찾았을 거다. 그가 과녁 세우고 활 쏘던 장소가 태종대로 전한다. 마음 다잡을 새해 벽두 여행지로 이만한 곳도 없어 보인다. 해돋이도 멋지고, 등대 불빛 은은한 초저녁 풍경도 참 운치가 있다. 등대는 1906년 세워져 100년 넘는 시간 동안 부산항의 길목을 밝혔다. 우리 가는 길도 비춰줄 것 같은 ‘희망의 등대’다.

●부산이 한 눈에…봉래산

김두진 영도문화원 사무국장은 “부산 제대로 보려면 영도에 와야 한다”고 했다. 영도 한 가운데 솟은 봉래산(395m) 올라보면 이 말 실감한다. 봉황이 날아든다는 산이다. 정상에 오르면 부산 서쪽 송도해변부터 동쪽 해운대 일대까지 눈에 다 들어온다. 육지 쪽에서 바다 바라보는 일은 흔해도, 바다 쪽에서 부산 바라보는 일은 드물다. 이곳에서 바라 본 한국 제2의 도시는 회색의 콘크리트가 뒤범벅이 된, 치열한 삶의 현장이 아니다. 은근한 멋과 순박한 정서가 흐르는 고향집 같은 항구 도시다. 이런 풍경 하나 마음에 품으면, 일상 고달플 때 큰 힘 된다.

오륙도 뒤에서 시작되는 해돋이 장관이고, 송도 뒤로 떨어지는 해넘이도 참 곱다. 도시의 야경은 또 어찌나 아름다운지 보고 있으면 ‘우와~’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봉래산은 서울의 남산 같은 곳이다. 영도 사람들 산책 삼아, 운동 삼아 즐겨 찾는다. 사방으로 등산로가 나 있는데, 75광장 뛰 쪽에서 시작해 손봉, 자봉을 거쳐 정상까지 가면 멋진 풍경을 두루 볼 수 있다. 넉넉잡아 1시간 거리다. 또 봉래산체육공원을 거쳐 정상으로 가는 코스도 사람들 즐겨 이용한다. 눈 오지 않으면, 체육공원지나 MBC영도송신소까지 차가 갈 수 있다. 여기서 약 20분 걸으면 정상이다. 체육공원 아래에 울창한 편백나무 숲(자연생태학습장)이 있다. 쉬어가기 딱 좋은 상쾌한 공간이다.

부산 앞 바다에 떠 있는 영도는 부산항의 천연 방파제다. 먼 바다에서 들이치는 세찬 바람과 험한 파도가 이 섬에 부딪혀 다 부서진다. 이러니 영도는 부산항의 천연방파제다. 영도에 가면 알 수 있다. 이 든든한 섬이 우리 삶의 풍파도 다 막아줄 거란 사실을. 이러니 새해 벽두에 영도에 가면 희망 솟는다.

●여행메모

▲찾아가는 길: 중구에서 영도다리 건너 영도경찰서 뒤쪽 항만으로 빠지면 남항동 일대다. 남항방파제 따라 가면 절영해안산책로 시작점이다. 이 산책로 끝나는 중리해변까지는 약 3km. 쉬엄쉬엄 걸으면 1시간 남짓 거리다. 산책로 들머리 위쪽이 흰여울문화마을이다. 태종대는 영도의 가장 남쪽에 있다. 차로 봉래산 정상 아래까지 가려면, 청학동 해련사 찾아간다. 이 절집 들머리에서 우측으로 가면 편백나무 숲, 봉래산체육공원, 송신소가 차례로 나온다.

▲먹거리: 봉래동에 위치한 부산삼진어묵(051-416-5466)은 그 유명한 ‘부산오뎅’의 시초로 전한다. 일본에서 어묵 제조 기술을 배워 온 이 곳(삼진식품) 박재덕 씨(설립대표)가 1953년 봉래시장 입구에 판잣집을 빌려 어묵 제조를 시작했단다. 현재 이곳은 다양한 종류의 어묵을 제조, 판매하고 있는데, 유명 베이커리 못지않은 분위기와 시설을 자랑한다. 어묵 제조 공간을 통유리로 마감 해, 전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다. 곡 어묵체험전시장도 문을 열 예정이다.

영도구 동삼동에 위치한 목장원(051-404-5000)은 오래전부터 부산에서 제법 이름 날리던 숯불갈비전문점이다. 바다 전망도 끝내준다.

글ㆍ사진=김성환기자

한국스포츠 글ㆍ사진=김성환기자 spam001@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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