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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집 고쳐주며 내 마음도 고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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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집 고쳐주며 내 마음도 고쳐요"

입력
2013.12.30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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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이 맹위를 떨치던 지난 26일 오전 경기 남양주시의 한 외딴 마을. 낡은 철사로 동여 맨 슬레이트 지붕이 흘러내릴 듯 위태로운 가건물에서 중장년 5명이 낡은 도배지를 떼어 내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법원에서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이들이 서울보호관찰소의 지휘 아래 장애 아내를 돌보며 생활하는 김모(63)씨의 집 수리에 나선 것이다. 임금 체불(근로기준법 위반)로 사회봉사명령 112시간을 받은 도장(塗裝) 공업사 사장 A(45)씨, 통신판매 사기로 사회봉사를 하게 된 B(64)씨, 주가조작 혐의로 집행유예와 보호관찰,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C(48)씨…. 저마다 남 모를 사연을 품은 이들은 묵묵히 낡은 집의 더께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사회봉사명령 대상자들은 주로 보호관찰소에서 지정하는 복지관 등 공공기관에서 봉사를 했다. 하루 8시간 일손을 돕는 것이 봉사의 전형이었던 셈. 하지만 5월부터 법무부가 '사회봉사명령 국민공모제'를 시행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도움이 필요한 개인 및 단체가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홈페이지(www.cppb.go.kr)에 신청하면 관할 보호관찰소가 실사를 거쳐 봉사명령을 받은 이들을 파견ㆍ감독한다. 김장 담그기, 장애 행사에서 휠체어 밀기, 집 고치기 등 요구도 다양하다.

이날 봉사는 김씨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 면사무소 직원이 "공공근로를 하며 장애 아내를 돌보는 김씨의 낡은 집을 고쳐 달라"고 신청해 성사됐다. 딱한 사연을 들은 서울보호관찰소가 예산을 쥐어짜 수리비를 마련했고 관찰소 '나눔봉사단' 소속 직원 7명도 현장에 나와 힘을 보탰다. 정민철 주무관은 "사회봉사를 독려하기 위해 함께 일하다 보니 이제 같이 일하는 게 자연스럽다"며 "공모제 시행 이후 집 고치기 봉사가 늘어 밤에 학원을 다니며 도배 기술을 배웠다"고 했다.

낡은 도배지를 떼어내니 눈석임물에 눅눅해진 벽에서 곰팡이도 함께 우두둑 떨어지는 통에 묵은 때를 벗기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도색, 도장 전문가인 A씨는 "특기를 살려 봉사를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A씨와 장 주무관이 능숙한 솜씨로 스티로폼을 덧댄 벽에 새 벽지를 바르고 너덜너덜한 전기 배선을 걷어낸 뒤 새로 까는 동안 다른 이들은 지붕 수리, 실리콘 작업 등에 힘을 쏟았다.

이틀째 계속된 작업 끝에 새 방풍외벽과 출입문이 완성되자 낡은 가건물은 비로소 안과 바깥의 경계가 분명한 집의 모양새를 갖췄다. 혹한의 한 고비를 버티게 된 집주인 부부는 "덕분에 웃풍 걱정은 덜게 됐다"며 고마워했다. 뒤집어 쓴 먼지를 털어내고 돌아갈 채비를 하던 봉사자들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신달수 사회봉사명령담당관은 "국민공모제 시행으로 현장에 나와 봉사하면서부터 대상자들에게 '나만 어렵고 손해 보며 사는 줄 알았다'는 반성의 말을 많이 듣는다"고 했다. 교화 효과가 적지 않다는 얘기다.

신 담당관은 "아직까지는 '범죄자들이 와서 무슨 일을 돕냐'는 선입견도 적지 않지만 앞으로 봉사 신청도 늘고 건축자재 지원 등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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