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은 늘 쌀값이 불만이다. 허리 펼 틈 없이 벼 뿌리고(직파ㆍ直播), 옮겨 심고(이앙ㆍ移秧), 다시 심고(보식ㆍ補植), 김 매고, 애지중지 추수한 자식 같은 쌀을 막상 세상에 내놓으면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다는 자괴 때문이다. 실제 쌀값은 10년간 거의 제자리걸음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민들의 푸념이 근거가 없는 건 아닌 셈이다.
3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11월 쌀값(도매가 기준)은 80㎏당 17만2,048원으로, 10년 전(16만2,429원)보다 5.9% 오르는 데 그쳤다. 반면 물가인상이 반영되는 실물 화폐로 불리는 금은 10년 전 1만5,604원이던 1g당 가격(국내제련소 판매가 기준)이 4만5,868원으로 무려 3배 가까이(294%) 올랐다. 같은 기간 전체 생산자물가지수는 30% 상승했다.
쌀값의 하향 안정세는 쌀 목표가격 때문이다. 정부는 2005년 쌀 수매제도를 폐지하면서 8년간 80㎏당 17만83원으로 고정된 쌀 목표가격을 적용했다. 산지 쌀값이 목표가격 밑으로 떨어지면 차액의 85%를 직불금 형태로 보전해주는 방식이라 농가 소득 보전장치의 역할도 했다.
올해 특히 농민들이 쌀값에 민감한 이유는 새 목표가격을 정할 시기가 왔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정부가 애초 제시한 17만4,083원이 적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정부는 정부대로 17만9,686원이라는 수정안을 제시하며 그 정도가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는 마지노선이라는 입장이었다.
정치권은 농민 손을 들어줬다. 30일 여야 원내대표가 쌀 목표가격을 18만8,000원으로 인상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다만 "내년부터 5년"(여당), "3년간"(야당) 등 적용기간에 대한 입장 차만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당황하는 분위기다. 수정안까지 제시하면서 버텼건만 정작 주무부처는 빼고 목표가격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정부 재정에 부담이 될 것" "예상도 못한 가격" 등의 지적이 잇따랐다.
반면 농민단체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앞서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는 쌀 목표가격이 18만원 이상이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성명을 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