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국가정보원 개혁안과 주요 법안 처리 문제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당초 예정됐던 어제 본회의에서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여야는 오늘도 물밑 협상을 통해 남은 쟁점들에 대해 일괄 타결을 추진한다는 방침이지만, 자칫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예산안 처리에 가장 큰 걸림돌은 정보관(IO)의 정부 기관 등에 대한 출입 금지를 핵심 내용으로 한 국정원 개혁법안 문제였다. 민주당은 정부기관 상시 출입과 사찰, 감시 등 구체적으로 금지해야 할 IO의 활동 내용을 법에 명시하고, 불법 행위 시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을 넣자고 주장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정보기관의 안보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법령에 위반한 정보 활동을 해선 안 된다'는 수준에서 명문화 해야 한다며 맞섰다.
IO의 정부 기관 상시 출입금지는 이미 국정원의 자체 개혁안에도 포함될 정도로 여야가 의견을 같이 한 내용이다. 다만 법 조문에 어떻게 명시하느냐를 놓고 예산안을 볼모로 줄다리기를 계속하다 준예산 편성까지 걱정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니, 이를 지켜본 국민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따름이다. 한 발씩 양보하면 손쉽게 절충점을 찾을 수 있는 데도 이를 이끌어내지 못한 여야 지도부의 정치력 부재를 탓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만일 오늘 예산안 처리가 불발돼 준예산이 편성되면 그 기간이 얼마나 됐던 간에 '한국판 셧다운(부분 업무정지)' 시작을 의미하기에 나라 경제에 좋을 리가 없다. 정부가 계획했던 각종 경제활성화 정책 도입 시기는 그만큼 뒤로 미뤄진다. 준예산은 천재지변 같은 사태를 의식해서 만든 비상 조치이지, 여야 갈등에 대한 해법이 아니다. 국회 역사 상 최악의 오점이자 가장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여야는 올해의 마지막 날인 오늘만큼은 그간의 갈등을 모두 마무리하고 내년을 기약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새해 0시에 이르러 처리하는 이른바 '제야의 종 예산'이라도 통과시키는 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