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가치를 그 위에 쌓인 먼지의 더께가 말해주지는 않는다. 소비하지 않는 문호의 문장은 그저 쇠락의 잔해일 뿐이다. 읽히지 않는 고전이 손에 쥔 만화책 한 권의 의미보다 크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소극장 산울림이 새해 1월 4일부터 4월 6일까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등 고전소설 6편을 극화해 무대에 올리는 '산울림고전극장 - 고전 읽는 소극장' 시리즈는 서가에서 죽어간 고전을 다시 뛰게 할 연극인들의 그럴듯한 연서다. 어린 시절 어렴풋이 간직했던 고전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독자에서 관객으로 자라난 이들을, 다시금 연극으로 살아난 스토리와 관계 맺도록 할 것이다.
이번 시리즈에선 극단 모도(연출 전혜윤)의 '설국'(1월4~15일)을 시작으로 걸판(연출 오세혁)의 '분노의 포도'(원작 존 스타인벡ㆍ1월18~26일), 청년단(연출 민새롬)의 '홍당무'(원작 쥘 르라르ㆍ2월5~16일), 작은신화(연출 정승현)의 '롤리타'(원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ㆍ2월20일~3월9일), 양손프로젝트(연출 박지혜)의 '김동인단편선'(3월14~23일), 여행자(연출 이대웅)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원작 나쓰메 소세키ㆍ3월26일~4월6일) 등이 선보인다.
산울림 측은 주로 30대 젊은 연출가들의 감성을 통해 수준 높은 고전소설을 연극으로 풀어내고 관객에게 재차 고전으로 손을 뻗을 기회를 주자는 의도에서 이번 시리즈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올해 초 등 5개 고전을 극화하는 것으로 '고전극장' 시리즈를 시작한 산울림은 앞으로 100권 가량의 고전소설을 꾸준히 공연할 계획이다.
산울림 극장장 임수진씨는 "학창 시절 읽지 못한 고전들을 성인이 돼 다시 찾아 읽기가 쉽지 않아 많은 이들이 고전이 주는 기쁨을 잊고 산다"며 "고전극장 기획에 참여하는 젊은 극단들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 전 연령층이 호응하는 작품들을 올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극들은 고전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자는 취지에 따라 각색을 최소화하고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간다. 하지만 라이브 밴드와 극('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을 함께하는 등 톡톡 튀는 연출자들의 상상력은 최대한 살린다. '분노의 포도'를 연출하는 오세혁씨는 "낙원상가 인근 실버영화관에서 이 작품을 영화로 본 후 현대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그려내는 연극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했었다"며 "이 작품에선 (소극장 규모에 비해 많은 수의) 배우 12명이 출연해 일자리를 찾아 길 떠나는 이들의 분노를 표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극장 산울림은 고전 문학뿐 아니라 고전음악과 연극의 만남도 기획시리즈로 만들어가고 있다. 고전음악 기획시리즈 첫 작품은 30일까지 공연한 '베토벤의 삶과 음악 이야기'다. 청력을 잃어가는 음악 천재 베토벤의 편지를 모은 책 에서 발췌한 글들을 배우(박상종)가 낭독하고 피아노소나타 제2번 '월광' 1악장 등 7곡을 전문 연주자들이 라이브로 들려줘 큰 호응을 얻었다. 임수진씨는 "연말에는 고전음악 시리즈를, 연초에는 고전문학 시리즈를 이어갈 것"이라며 "공연을 본 관객들이 집에 돌아가 책을 다시 읽고 음반을 찾아 듣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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