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대비 너무 비싼 집값에 임차시장은 전세서 월세로 급격히 전환, 국민 주거 안정성 갈수록 악화되는 데 정부는 매매거래 활성화만 집중, "지나치게 빠른 월세화 막고 공공임대정책 공급 서둘러야"
경남 마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김모(32)씨는 남 부럽지 않은 대기업에 다니고 나이도 찼지만 아직 결혼 생각이 없다. 결정적인 이유는 집을 마련할 자신이 없어서다. 6,000만원에 육박하는 적지 않은 연봉을 받으면서 1억원을 저축했지만 전세로라도 아파트를 마련하려면 2억원 이상이 들기 때문이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서울 신길동의 전세보증금 9,000만원짜리 23.1㎡(7평) 도시형생활주택. 김씨는 "대학 재학 중에 자취방과 하숙방을 전전한 건 그렇다 치지만 지금 괜찮은 직장을 다녀도 평생 전세 아니면 월세로 불안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착잡하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첫 해에 '4ㆍ1 부동산대책' 등 주택경기 부양 의지가 실린 부동산 정책을 세 차례나 내놓았지만 국민들은 거래 활성화보다는 여전히 부동산 가격 안정을 원했다. 한국일보가 지난해 12월과 올해 12월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국민이 행복해질까를 물은 설문조사에서 '부동산 가격 안정화를 통한 주거 안정'은 2년 연속 상위 5순위에 들었다. 지난해(27.0%)와 올해(28.1%) 모두 비슷한 비율로 각각 5번째, 4번째 행복의 조건으로 꼽혔다.
정부와 부동산업계는 집값이 하향 안정화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국민들이 체감하는 주거여건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소득 대비 집값은 여전히 너무 비싸고, 살기 좋고 잘 팔리는 아파트일수록 가격이 높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월세를 찾게 마련이지만 집값 상승이 멈추면서 월세 전환이 급격히 늘어 하반기부터 전세난이 불어 닥쳤다. 서민의 거주비용은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이다.
과연 현재 집값은 떠받쳐야 맞는 것일까, 안정화시켜야 맞는 것일까. 장기추세로 보면 집값은 물가상승분보다 덜 올랐다. 통계청에 따르면 1986년 1월 34.86인 소비자물가지수(2010년 기준)는 올해 11월 107.79로 3.09배 올랐다. 같은 기간 KB국민은행의 주택매매가격 지수(2013년 10월 기준)는 39.3에서 100.3으로 2.55배 올랐다. 하지만 주택 종류에 아파트를 대입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국의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24.0에서 100.3, 서울은 22.6에서 99.0으로 4배 이상 올라 물가보다 상승폭이 높다. 단독주택(67.9→100.6)과 연립주택(46.7→100)이 2배 정도 상승한 데 그쳐 이를 상쇄했을 뿐이다. 특히 최근 10년간 아파트 값은 심하게 폭등했다. 2000년 3.3㎡ 당 652만원이던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2009년 1,838만원으로 정점을 찍고 지난해 1,650만원으로 하락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2.53배 수준이다. 이러한 이유로 글로벌 금융위기 후 아파트 가격이 진정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거품이 있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더구나 소득은 집값을 따라잡을 만큼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2010년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이 2.53배 상승하는 동안 서울의 1인당 총소득은 1,763만원에서 3,873만원으로 2.2배 오르는 데 그쳤다. 지난해 2인 이상 가구당 연간 총소득은 4,884만원. 서울에서 30평형대 아파트가 최소 5억원임을 감안하면 10년치 소득을 모아야 겨우 살 수 있다. 한 번 세입자는 영원한 세입자로 남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매매 활성화에서 저소득층과 주거 불안정 계층의 주거복지 확대로 부동산 정책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 공급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최하위인 5%에 불과하다. 이밖의 주거복지정책은 내년 10월부터 97만가구에 월 10만원씩 지원하는 주택바우처가 사실상 전부다.
지난 한 해동안 세 차례 내놓은 부동산 대책도 주택경기 부양에 무게가 실려있다. 국내총생산(GDP)의 13%를 차지하는 주택산업을 통해 경기를 되살리겠다는 판단이다. 특히 급증하는 전월세 난민의 고통을 경감하겠다던 '8ㆍ28 전월세대책'은 무늬만 전월세대책이라는 비판이 컸다. 전월세난에 시달리는 세입자 맞춤용 대책은 없었고 빚을 내 전세수요를 매매로 돌리도록 한다는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또 다주택자의 경우 주택 구매시 취득세를 기존 4%에서 6억원 이하인 경우 1%로 낮추는 다주택자 취득세 차등부과 폐지, 일반적인 취득세 감면 등 '가진 자'만 혜택을 볼 수 있는 정책만 추진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부동산경기 부양이 일시적인 거래증가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주택시장의 구조적인 하향 안정화를 되돌리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주거안정성이 낮은 계층의 주 거주지인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의 월세 전환율이 8~10%로 상당히 높은 데 이런 부분을 해소하는 데 정책의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전세시장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월세로 바뀌지 않게 민간 임대업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높이고 장기임대주택 등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서둘러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