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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행복했습니까… 박근혜정부 남은 4년 과제] "없는 살림에 세금 더 내더라도 기초연금 혜택 꼭 받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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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행복했습니까… 박근혜정부 남은 4년 과제] "없는 살림에 세금 더 내더라도 기초연금 혜택 꼭 받았으면…"

입력
2013.12.30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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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꼬리만한 월급에서 세금은 떼가면서 기초연금 혜택은 못 받게 된다고 생각하니 억울하지요. 웬만한 복지 혜택을 다 받는 돈 많은 사람들한테 세금을 제대로 걷어야 합니다."

서울시립대에서 14년째 청소일을 하고 있는 정찬희(65)씨는 지난해 대선 당시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을 주겠다던 박근혜 후보의 공약에 큰 기대를 했었다. 오전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강의실 곳곳을 쓸고 닦아 한 달 월급 153만원(세후 138만원)을 받는 그는 2년 뒤 정년을 맞으면 월 20만원 안팎의 국민연금이 소득의 전부가 된다. 하지만 정부가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만 연금을 주기로 공약을 수정하면서 집이 있는 정씨는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정씨는 "필요하면 나도 세금을 더 낼 테니 있는 사람들한테 세금을 더 걷어 노인복지를 확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도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는 만큼, 있는 사람들이 세금을 빼돌리는 일을 막아줬으면 좋겠어요." 정씨의 동료인 송필순(66)씨는 매달 5,220원의 세금이 공제되는 급여명세서를 보여주며 이렇게 하소연했다. 송씨는 허리가 아파 자리보전하는 남편을 두고 23년째 식당일, 청소일을 하며 혼자 생계를 꾸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기초노령연금을 받기 시작했지만 근로소득이 있어 전액(9만6,800원)을 못 받고 75%만 받고 있다. 최저임금을 약간 넘기는 월급 외에 4,000만원짜리 전세집, 10만원도 안 되는 국민연금밖에 수입이 없지만 그 역시 내년 기초연금 20만원 전액을 못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일보가 송년기획으로 '새 정부의 남은 4년 동안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행복해질까'를 국민들에게 물은 결과 응답자 1,324명 중 가장 많은 50.2%가 '부유층에 대한 증세로 안정적인 복지재원 마련'을 꼽았다. 증세에 대한 저항감이 줄어든 점이 놀라운 한편, 박근혜 정부가 지난 한 해 내내 '증세 없는 복지'에 얽매여 공약 실현에 갈짓자 걸음을 계속한 것에 대한 필연적 반응이라는 해석이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의 무상급식 논쟁 이후 국민들의 복지확대 욕구는 급속도로 확산됐다. 박 대통령은 이에 부응해 야당보다 더 공격적인 복지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재원 문제에서 번번이 발목을 잡혔다. 핵심 복지공약이었던 기초연금 도입안이 대표적인 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행복연금위원회 보건복지부 청와대를 오가며 난수표처럼 복잡해졌고, 이에 대한 갈등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낙마하기까지 했다. 4대 중증질환(암, 심ㆍ뇌혈관계 질환, 희귀난치병)을 건강보험으로 보장하겠다는 또 다른 복지 공약은 '말 바꾸기' 논란에 휩싸인 끝에, 실제 부담이 가장 큰 상급병실료 선택진료비 간병비를 제외하는 것으로 뒷걸음쳤다.

전문가들도 증세는 불가피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달 53명의 전문가들에게 '기초연금 등 복지재원 조달방안' 13가지를 제시하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하도록 한 결과 '기존 조세의 세원 확대 및 강화(소득세 강화 및 부가가치세 세율 인상)'가 18.9%로 가장 선호됐다.

정치권도 부자증세에 시동을 걸었다. 야당은 소득세 최고세율(현행 38%) 구간을 기존 '3억원 초과'에서 '1억5,000만원 초과'로 낮추는 소득세법 개정안(이용섭 민주당 의원),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을'3억원 초과'에서'1억2,000만원 초과'로 낮추면서 최고세율을 40%로 인상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박원석 정의당 의원) 등을 국회에 제출했고, 부자증세를 한사코 반대하던 새누리당도 결국 연말 소득세 최고세율구간을 '1억5,000만원 초과'로 낮추는 야당안을 결국 수용했다. 연간 3,500억~3,600억원의 세수가 추가로 걷힐 것으로 예상된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복지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세금을 올려야 한다는 국민적 컨센서스가 이뤄졌다고 본다"며 "5억원 이상 버는 슈퍼부자의 소득세율을 높이고 이어서 법인세, 소비세를 인상하면 증세에 대한 저항이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소득 연 1억원을 넘는 억대 연봉자는 2006년 8만4,000명(전체 근로자의 0.67%)에서 지난해 41만5,000명(전체 근로자의 2.6%)으로 5배 가량 늘어났다.

이명박 정부 때 대폭 깎아준 법인세를 원래대로 환원해 복지 재원을 마련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한국의 법인세율(22%)은 국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인 22.8%보다 낮고 법인세의 실효세율(조세감면 등으로 공제받고 실제로 부담하는 세율)은 15.2%로, 프랑스(8.2%)와 그리스(11.0%)를 제외하고 가장 낮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주식 양도차액 과세나 종교인 과세 등 과거 면세대상이었던 것부터 과세할 필요가 있다"며 "그래도 세율을 올린다면 법인세-소득세 순서로 로드맵을 짜야한다"고 말했다.

'선 부자증세 후 보편증세'를 주장하는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사회복지세 명목으로 우선 일정액 이상의 법인ㆍ소득ㆍ종합부동산세에 20%의 세꼭?매겨 부자들로 하여금 20조원 가량의 복지재원을 마련하도록 하자"고 제안한다. 그는 "이 재원으로 보편복지 정책을 펴 중산층이 복지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중산층이 복지 수혜를 받으면 자연스럽게 보편증세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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