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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12월 30일] 제2의 이토 히로부미와 청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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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12월 30일] 제2의 이토 히로부미와 청일전쟁

입력
2013.12.2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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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다."

최근 만난 한 중국 교수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두고 한 말이다. 실제로 두 사람은 같은 일본 우익 정치인인데다 고향도 야마구치(山口)현으로 같다. 특히 아베 총리는 "이토 히로부미는 위대한 인물"이라며 존경심을 드러낸 바 있다. 그는 또 이토의 스승으로, 정한론(征韓論)과 중국 침략을 주창한 사상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을 기리는 신사도 찾았다. 지난 26일에는 급기야 2차 대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 신사까지 참배했다. 이러한 아베 총리의 행보에 이토의 그림자를 떠 올리는 것은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마찬가지일 수 밖에 없다.

중국이 아베 총리를 경계하는 것은 이틀 후면 시작되는 2014년이 청일전쟁 120주년이 되는 해란 점도 무관하지 않다. 중국에선 갑오(甲午)전쟁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중국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겼다. 청나라 군대는 1894년 7월 아산만 앞바다 풍도의 첫 전투뿐 아니라 성환, 평양, 압록강 어귀에서 잇따라 대패했다. 일본은 청나라 최강의 북양(北洋)함대를 전멸시키면서 랴오둥(遼東)반도와 산둥(山東)반도의 일부까지 점령했다. 청나라는 결국 막대한 배상금을 일본에게 지불하고 타이완(臺灣)까지 넘겨주게 된다. 댜오위다오(釣魚島ㆍ일본명 센카쿠)를 뺏긴 것도 이 때다. 당시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였다.

최근 동북아 정세는 120년 전 상황이 재연되는 형국이다. 1888년 일본 산업혁명 이후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던 과거 일본 경제처럼 지금의 일본도 잃어버린 20년 후 새로운 수요가 절실한 상태다. 중국도 철강과 조선 등 생산 과잉이 심각하다. 양국 모두 '군수경제'를 북돋을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달라진 것은 지금의 중국은 옛 청나라가 아니란 점이다. 중국은 이미 일본을 누르고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기회만 있다면 120년 전의 참패를 되갚아주고 싶은 게 중국의 속내일 수 있다. 중국이 처음으로 '국가안전위원회'를 설치하고,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까지 선포하며 일본과의 무력 충돌에 대비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마오쩌둥(毛澤東)에 견줄 정도로 강한 지도자로 평가 받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일본에 대해선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을 태세다. 시 주석과 제2의 이토가 아시아 맹주를 위한 한판 승부를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한반도 상황도 120년 전처럼 혼란스럽다는 데 있다. 사실 한민족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했다는 관점에서 보면 한반도는 이미 60여년 이상 '내란 분열' 상황이다. 남북한 각각도 건강한 국가라 말하기 힘들다. 남한에선 그 누구도 안녕하지 못한 나날들이, 북한에선 대숙청의 칼바람이 이어지고 있다. 52%의 지지로 선출된 남한의 여성 지도자는 48%를 인정하지 않은 채 불통으로 일관하다 소중한 1년을 허비했다. 백두혈통으로 장군이 된 북한의 젊은 지도자는 고무부까지 처형하고 나섰지만 불안감만 더 키웠다.

120년전 청나라와 일본이 자신들의 땅도 아닌 한반도에 군대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동학농민운동에 놀란 민씨 정권이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한 게 단초였다. 일본군은 조선에 파병할 땐 상호 통보토록 한 청나라와의 톈진(天津)조약을 근거로 해 들어왔다. 이후 두 나라 군대가 돌아가지 않고 충돌한 게 청일전쟁이다. 국제 정세가 소용돌이칠 것으로 예상되는 2014년이다. 이럴 때 믿을 수 있는 건 다른 나라 군대가 아니라 우리 자신 뿐이란 게 청일전쟁의 교훈이다. 지도자는 결국 국민에게, 민족에게 의지해야 한다. 새해에는 국민에게 다가서는 대통령을 볼 수 있길 기대한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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