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만큼 중요한 경제적 결정은 없다. 그래서 각종 부실로 저하된 금융의 고유기능을 복원하느라 많은 노력과 재원이 동원된다. 그러나 정작 부실처리보다 중요한 것은 사전적으로 부실의 가능성을 줄이는 데 있다. 불행히도 우리의 금융권은 감독 미비와 폐쇄적 지배구조 탓에 '그림자 금융'의 영역에서 전개된 또 다른 부실화를 차단하지 못했다. 금융지배구조에 대한 진지한 개혁논의가 필요한 이유이다. 썩어야만 도려내는 소극적 방식으로는 우리의 미래재원을 지킬 수 없다. 공공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금융 산업마저 낮게 드리워진 열매만 취하는 안이함과 잠재적 부실요인에 대한 절충적 태도로 점철되어 있다. 그 결과 광범위한 사회 인프라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금융산업은 공공성과 수익성의 측면에서 심각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금융의 역할과 기능을 정부가 대신할 수는 없다.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위험요인들이 산재한 지금의 여건 속에서 금융의 역할복원을 위해서는 사후적 부실관리를 넘어 다양한 가치창출에 필요한 제반 서비스 제공이 절실하다. 그동안 금융권은 담보 위주의 관행과 안이한 관리로 가치창출에 이르기까지 많은 공이 들어가는 신성장 동력의 발굴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특히 투자 초기의 위험감수를 위한 다양한 위험분담체계 구축노력이 부진해지면서 일자리 창출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사업기반은 해외로 이전되고 있다. 그 결과 정책적 차원의 지원대상은 늘어만 가고 있으며 금융권은 이제 당국의 지원이나 묵시적 보증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생존 우선의 위험기피 주체로 전락하였다.
금융부문의 불편한 진실은 주인으로서의 공공의식이 절충되는 사회지배구조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큰 아시아 지역에서 금융은 정부의 뒷전에 숨어있으며 시장참여자들은 눈치 보기와 줄서기에 매달리고 있다. 최근 중국의 경우에도 은행여신과 그림자 금융 부실의 후유증으로 인해 신용 흐름이 원활치 못하게 되었다. 정책판단으로 신용 흐름이 좌우되다 보면 결국 자원배분이 왜곡되기 쉽고 동시에 부실처리 부담이 커지기 마련이다. 특히 제반 시장여건이 갖추어지지 못한 경우 시장실패 보정차원의 정부개입은 더욱 빈번해진다. 정부개입으로 얻어진 안정의 이면에서 위축된 민간주체들의 심리는 현 투자부진과 고용 애로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경제회복을 도모하는 미국에서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초저금리하의 구조적 장기침체 우려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라도 점차 드리워지는 '구조적 장기침체'(structural stagnation)의 그림자를 벗어나려면 개혁차원의 노력을 통해 금융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정상화의 핵심은 대리인 문제의 해결에서 출발한다. 첫째, 부실관리의 실패가 이견을 제시할 수 없는 폐쇄적 환경에 기인한다면 금융지배 구조상의 변화가 우선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기존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신규 민간인들의 참여를 통해 내부적 견제가 가능한 여건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둘째, 정부의 역할을 재정립함으로써 민간 스스로 위험을 파악하고 대비할 수 있는 책임경영의 환경조성에 주력해야 한다. 공익을 해치지 않는 수익성 추구의 원칙도 강조되어야 한다. 위기라는 극단적 상황을 배경으로 조성된 책임기피적 위험추구 행태라든지 정부보증과 지원프로그램의 여부가 우선적으로 중시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금융의 고유기능이 원활히 작동할 수 있다. 셋째, 장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면 역내차원의 개발 이니셔티브와 안정적인 투자환경의 조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각자 도생의 대립적 구도는 공도동망의 첩경이다. 넷째, 민간의 창의성이 존중되는 융합적 생태계 조성을 위해 칸막이식 상부구조의 엇박자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특정 기술표준으로 무장한 기득권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소비자들의 선택권한이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금융의 역할이 시장중심으로 재정립되어야 비로소 소비와 신규투자가 가능해지며 고용증진을 통한 장기침체 극복이 가능하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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