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65ㆍ사진)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는 회고록이나 평전과 인연이 많다. 그는 올해 국가인권위원장 재임 시절(2006년 10월~2009년 7월)의 회고록 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구인 황용주씨의 삶을 담은 를 연이어 냈다. 또 인권 변호사 조영래씨의 평전을 쓰기도 했다. 지난주 서울 서초구의 집에서 만난 그는 8월 정년퇴임 후 자신을 법학의 길로 이끌어준 윌리엄 더글러스(1898~1980년) 미국 연방 대법관의 전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의 회고록 문화 어떤가.
"아직 견실한 회고록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다. 필자는 공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객관화하는 데 익숙지 않고 언론과 독자의 관심도 지엽적인 사실에 대한 흥미 위주다. 또 과거사와 개인의 행보에 대한 평가를 두고 극렬하게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도 문제다."
-회고록을 남기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우리 사회에서 유난히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논란이 큰데 그들이 자신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박정희 기념ㆍ도서관에 가서 보니 비난 받는 일들은 사실 자체가 빠져 있다. 본인이 뭐라도 자신의 생각을 남겼으면 그를 바탕으로 논쟁을 할 텐데, 그게 없으니 한쪽은 무조건 덮어버리려고 하고 한쪽은 계속 약점을 들춰서 비난한다. 박 전 대통령은 산업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지만 본인도 눈물을 흘릴 일이 많았을 것이다. 당시 자기 마음이 어땠는지 기록했다면 본인을 위해서도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이승만 전 대통령과 김구 선생은 평가가 많이 엇갈리는데 김구는 본인이 직접 쓴 책이 있지만 이승만은 그런 게 없다. 김구의 자료만 보고 그에 상응하는 이승만의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이승만에게 가치를 덜 부여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든다."
-회고록을 남기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공인으로 산다는 것은 역사적인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역사의 법정에 서는 데 어떻게 자기 변론서 하나 없이 나설 수 있나. 나중에 다른 사람이 간접적인 변론을 할 수는 있지만 마음 속에 있는 것은 전달할 수가 없다.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최후진술을 하라고 하는 것처럼 자기변론이 필요하다. 공격을 받는 빌미가 될 수도 있지만 역사적 평가를 받는 사람들은 자기 육성을 남겨야 한다."
-직접 회고록을 내기도 했는데.
"공적인 일을 담당하는 고위직은 기록을 남겨야 할 책임이 있다. 한 나라의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역할이 크기 때문에 어떤 철학을 갖고 무엇을 했는지 비망록이라도 남겨야 한다. 특히 전문 관료가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간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그 자리를 맡았고 어떻게 그 생각을 실현했는지를 기록할 필요가 있다. 교수를 하다 인권위원회에 들어간 나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또 새로운 기관의 수장이 된 사람도 기록을 남겨야 할 필요가 크다. 김광웅 초대 중앙인사위원장이 당시 경험을 담아 를 썼는데 좋은 선례다."
안 교수가 책을 쓴 조영래와 황용주는 얼핏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의 저자인 조영래는 박정희 정권에서 수감과 수배를 겪었고 인권변호사로 큰 족적을 남겼다. 5ㆍ16 쿠데타의 숨은 주역인 황용주는 문화방송 사장 등을 지내며 승승장구하다 필화 사건을 겪은 뒤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다.
-대조적인 인물에 대한 책을 썼는데
"조영래와 황용주에 대한 책을 함께 쓰는 게 이상하다고 보는 게 한쪽으로 치우친 시각이다. 황용주에 대한 책을 내니까 보수 매체에서 내가 책을 썼다는 사실이 많이 부각됐다. 반면 그 책을 왜 썼냐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내가 전향했다는 말까지 있다고 한다. 을 냈을 때도 여러 불만을 들었다. 나는 조영래가 노동자 주권을 믿은 게 아니라 노동자도 인간이라는 생각을 가졌다는 관점에서 평전을 썼는데 이런 시각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회고록이나 평전의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는 정치인에 대한 선호에 따라 독자가 생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로 그에 대한 책을 읽고 나머지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균형을 위해서라도 반대쪽의 얘기를 들어봐야 하고 그러면 입장이 달라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다. 그런데 이런 교양 있는 독자층, 말하자면 지식인이 자꾸 줄어든다. 불행한 일이다."
류호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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