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이가 중정 부장을 그만 둔 다음에 내가 돈암동 집에 찾아가서 만난 적이 있어. 김형욱이 말이 어느 날 청와대에 들어오라고 해서 골프를 치려나 보다 하고 이빨 닦고 세수 하고 갔는데 박 대통령이 김부장 올해 몇 년 째 근무하고 있는가 묻더래. 그러더니 그 동안 고생 많이 했지, 오늘로 그만 두소 그러더래…. 중앙정보부에 딱 들어가서 봤더니 책상 서랍에 있는 서류까지 다 치워버렸대. 김형욱이가 내가 박정희를 천사 만들기 위해 악마의 역할을 해왔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고 아주 통곡의 눈물을 흘리더라고."
박정희 정권 시절 야당에서 활동했던 6선 경력의 김상현 전 의원이 전하는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경질 장면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구술자료관(mkoha.aks.ac.kr)에서는 김 전 의원뿐 아니라 김용환 전 재무부 장관, 함세웅 신부 등 한국 현대사 주요 인물 69명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구술자료관 구축사업단은 2009년부터 정당정치, 경제외교, 민주화와 종교, 한국군 등으로 분야를 나눠 구술을 수집, 순차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올해 별세한 남덕우 전 총리 등의 구술자료도 곧 서비스할 계획이다. 김원 한중연 교수는 "구술은 이야기 형식이기 때문에 회고록 등 문서보다 당시 상황과 고민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가끔은 구술자가 흥분해서 비속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구술사업단이 채록한 구술자 수는 240여명이고, 분량은 1,300시간이 넘는다. 하지만 구술자료 공개에는 제약이 따른다. 김선정 연구원은 "자료 공개는 구술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는데 사후 공개를 조건으로 내건 분도 있고, 인터넷에는 공개를 하지 말아달라고 하는 분도 있다"고 말했다. 구술자가 이름이나 연도 등을 틀리게 말하거나 논란이 되는 내용을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대목은 각주를 함께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도 전직 대통령과 관련 인물들의 구술을 모으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30시간 분량의 구술을 받는 등 각 정권의 장차관과 청와대 비서진 133명의 구술을 확보했다. 기록관 측은 일반 공개 여부는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또 국사편찬위원회도 2004년부터 중견 관료, 농민, 노동자 등 다양한 분야 인물 1,651명의 구술자료를 모았고, 국립예술자료원은 문화계인사 244명의 구술을 채록해 187명의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류호성 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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