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산 자락, 고요한 산사에 명상 수련을 위해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옆방에 머물게 된 부부에게 첫날부터 자꾸 마음이 쓰였다. 밤새 벽 너머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다음 날 아침엔 산책할 때도 강의를 들을 때도 팔짱을 꼭 끼고 서로를 의지하는 것이 확연했다. '명상으로 무엇을 얻고 싶은지'물었을 때, 남자는 생명을 연장하고 싶다는 결연한 대답을 내놓았다. 위장을 다 끊어내 20kg의 체중을 잃었다는 것이다. '육신의 허물이 무엇에 그리 중요한가'란 짓궂은 반문에는 23개월이 지난 아이가 있다는 여자의 대답이 돌아왔다. 오후의 수련이 계속될수록 남자는 가부좌와 식사를 힘겨워했다. 여자 역시 심한 두통이 찾아온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휴식도 일종의 수양이라며 방문을 닫아거는 부부를 조용히 응원했다. 그날 밤, 나는 벽에 귀를 바짝 대고 부부의 인기척을 확인하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 침묵과 정적이 진심으로 두려웠기 때문이다. 새벽 예불을 알리는 목탁 소리가 들리자마자, 다짜고짜 옆 방문을 두드려 열었다. 깔끔히 개켜진 이불 위로 희붐한 새벽빛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들이 언제 떠났는지 산사의 누구도 알지 못했다.
목포의 유달산은 가파른 산비탈에 실핏줄처럼 엉킨 골목길을 품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쌀과 면화를 수탈당한 중요거점이던 이 도시엔 특히나 가난한 부두 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쉽사리 풀릴 길 없이 막다른 미로로 꼬여있는 골목길은 여전히 신산한 삶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쁜 숨으로 가파른 경사를 오르던 때 비탈 끝 저쪽에서 남자와 여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바닥에 나동그라진 여자의 팔을 남자는 길게 잡아끌고 있다. 가까이 다가서자 "무슨 술을 이렇게 마셨냐"라고 나무라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옷매무새 사이로 허연 등짝이 보일만치 여자는 몸뚱어리를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도와드릴까요" 말을 건넸더니 지저분히 뒤엉켜 있는 머리칼 사이로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알 수 없는 사연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심지어 얼굴 위에는 여러 갈래의 핏자국이 엉켜있다. 어디에 부딪쳐 어쩌다 다쳤을까. 기립할 의지가 도무지 없는 그녀를 가까스로 일으켜 세웠지만, 발걸음은 무형의 스텝으로 갈팡질팡 꼬일 뿐이다. 남자는 여자를 남편에게 데려다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로와 같은 골목을 파고들어 그녀의 집에 겨우겨우 도달했다. 가구 대신 상자가 어지러이 널려있는 마루를 지나 남편이 자고 있다는 방안에 여자를 억지로 들여 보냈다. 그때 돌연 그녀의 양말 뒤꿈치가 눈에 와 박힌다. 앙증맞은 곰돌이 무늬는 마침 내가 신고 있는 양말과 똑같다. 그리곤 뒤돌아서며 자책한다. 그녀를 구출해낼 힘은커녕, 고작 양말만큼의 공감뿐이란 말인가. 그렇게 무심히도 골목길을 벗어나 유달산의 노적봉에 올랐다.
엊그제 고 최인호 선생님의 집필실에 초대를 받았다. 주인을 떠나보낸 유품들이 선생님을 대신해 따뜻이 환대해 주는 듯 했다. 책상 위에는 두툼한 원고지와 반쯤 찰랑이는 잉크병이 사이좋게 놓여 있었다. 한때 원고지와 잉크가 서로를 탐닉하여 태어났을 찬란한 문장과 절박한 이야기들이 수런스레 들려왔다. 책상 모퉁이엔 주인의 마지막 손길을 그대로 보여주듯 여러 책들이 흐트러져 있었다. 좀 더 빨리 찾아뵈었더라면,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를 만났던 것은 한여름의 수덕사, 한갓진 오후의 단 한 장면에 불과했었다. 생을 떠나고도 짧은 인연을 살뜰히 챙겨주시는 것은 큰 어른의 널따란 마음 씀씀이 덕택일 것이었다. 집필실을 나오며 몇 권의 책을 건네받았다. 책장을 펼치니 한여름에 카랑카랑 울려 퍼지던 그의 목소리가 귓가와 마음을 동시에 울렸다. 암 투병의 가장 절박한 순간에도 그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있었다. "우리들이 이 순간 행복하게 웃고 있는 것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의 눈물 때문이다. 울부짖는 사람과 주리고 목마른 사람과 아픈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통은 함께 깨어있는 영혼의 불침번 같은 것이다."
조은아 피아니스트ㆍ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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