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백화점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주말에 마술쇼를 보겠냐"고. 한 번도 그런 행사에 가본 적이 없지만, 이번에는 구미가 당겼다. 마술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가겠다고 했다. 마술에도 장르가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미녀의 목을 뗐다, 붙였다 하는 살벌한 것보다는 손수건이 춤추고 종이가 꽃이 되는 판타지가 좋다. 사전에 "여러 도구나 손재주로 사람의 눈을 속여 신기하고 이상한 일을 보이는 재주"라고 설명된 대로, 마술을 보는 묘미는 속는 즐거움이다.
■ 10여 년 전 미국 폭스TV에 라틴계 마술사 발렌티노가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등장, 마술의 비밀을 죄다 폭로했다. 이 폭로로 구식 마술은 사라졌고, 마술의 어두운 이면도 드러났다. 마술에 동원된 비둘기나 토끼가 줄에 묶이고 모자 안창에 눌려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물학대 논란이 불거졌다. 금붕어들이 마술사의 뜻대로 움직이는 중국의 금붕어 마술도 그랬다. 금붕어에 쇠구슬을 넣고 자석으로 움직인 것으로 드러나 이 마술은 금지됐다.
■ 발렌티노의 폭로가 아니더라도, 마술이 거짓이라는 것은 다 안다. 하지만 즐겁고 신기하고 아무런 피해도 없기에 기꺼이 속는 것이다. 물론 동물을 학대하는 마술은 빼고 말이다. 사람들은 공연장을 빠져 나오는 순간 더 이상 마술에 얽매이지 않는다. 누군가 동전을 금으로 만들겠다고 하면, 사기꾼이라고 멀리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작은 게 커지고, 가짜가 진짜가 되고, 또 많은 사람들이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는 마술 같은 영역이 있다. 바로 정치다.
■ 정치의 마술은 훨씬 고단수다. 애국, 안보, 민생이라는 큰 단어들로 포장돼 있어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린다. 이를테면 연평해전에서 이긴 김대중 정부보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을 당한 이명박 정부가 안보에 더 충실했다고 인식하는 식이다. 정치 마술은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우리가 남이가" "저들은 종북주의자"라는 낙인찍기가 보수의 마술이라면, "미국 쇠고기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먹겠다"는 식의 울분은 진보의 마술이다. 마술은 마술일 뿐이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